제주의 감자농사를 짓는 농부이자 여성 수필작가인 김은숙 작가는 매년 농사를 지으면서 삶의 단면을 썰어 담은 조각 글들을 모아왔다. 그리고 이번에 오랫동안 습작해 온 생활의 단상을 에세이 ‘비 오는 날은 사색이 흐른다’(시사문단 그림과책)로 묶어 출간했다.


“하얗게 핀 감자꽃이 바람결에 흔들립니다. 저 꽃잎 아래 흙 속 어딘가에서 감자알이 조금씩 부풀고 있습니다. 햇살을 먹고 밤마다 이슬을 머금으며, 어느 날 문득 땅이 갈라지겠지요. 묵묵히 제 안을 채워가는 시간이 있기에 튼실한 감자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 감자의 시간과 마주했습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멈추기를 반복했고, 썼다가 지우기를 되풀이했습니다. 글이라는 씨를 심고, 마음이라는 흙을 다지고, 그 위에 문장이라는 잎을 틔우는 동안 언제쯤 열매를 만날 수 있을까, 그 기다림에 자주 흔들렸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흙 속에서 감자알을 조심스레 건져 올리듯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고 나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따뜻함이 마음 깊은 곳에 번졌습니다. 수필을 공부하는 동안 마음도 여러 번 무너졌습니다. 누군가의 문장을 부러워하며 작아지기도 했고, 제 글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써 내려갔습니다. 그 끝에서 늘 작고 단단한 위로를 발견했습니다. 그건 어쩌면 땅속에서 영글어가는 감자의 속살처럼 조용히 존재하던 삶의 감정입니다. 이제 첫 수필집을 엮습니다. 부끄럽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삶의 결을 따라 써 내려온 문장들이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온기가 되어주길 소망합니다. 감자를 심고 마음속 흙에도 조심스럽게 한 문장씩 수확하며 살고 싶습니다. 수필이라는 길을 안내해 주신 교수님과 함께 쓰고 읽으며 마음을 나눈 문우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마음을 어디에 어떻게 놓아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글을 쓸 수 있도록 조용히 지켜봐 준 남편과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늘 응원을 아끼지 않은 가족이 있기에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 목차

1부
누렁이의 봄날 이야기
도서 상품권
가을을 닮은 언니에게
양념통닭
인생의 봄날
빛바랜 일기장

2부
흙 내음에 묻은 시간의 빛깔
라디오가 만드는 행복한 세상
야행성
서산에 노을처럼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도마 위 생선
내 아들은 고동호

3부
오일장을 맛보다
하늘바래기
비자나무 숲길을 걷다
비 오는 날은 사색이 흐른다
봉숭아 꽃물 같은
둘째에게 보내는 편지
우산

4부
눈물의 색깔
시 낭송, 그 떨림의 기억
젖은 겨울
아찔했던 순간
연꽃을 닮은 보길도
열정
가파도의 하루

5부
하루 동안의 기쁨
열무김치를 담그며
나마스떼 Namaste
웃음의 미학
물 전쟁
빨간불
초승달의 웃음

6부
하늬 지나는 날
고구마꽃
바람결에 피어난 찔레꽃
바람난 매화

◇ 김은숙 작가 약력

· 2024년 월간 ‘시사문단’ 수필 등단
· 제주문인협회 회원
· 제주수필아카데미 회원
· 구좌문학회 회원
· 한국시사문단작가협회 회원
·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작가
· 빈여백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