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은 올해로 27번째 해를 맞이하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24를 기대하며, 작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23 공연 중 서울실험예술인모임 SEAC의 무대를 돌아보는 칼럼입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24는 오는 8월 8일(목)부터 25일(일)까지 개최되며, 예술가 참가 신청은 오는 4월 30일에 마감됩니다.
작년 여름의 정점에 있던 8월 중순, 모처럼 갖게 된 여유를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23과 함께했다. 지난 8월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실험예술인모임(이하 SEAC)이 펼친 실험의 결과물을 세 차례 함께 보고 들었다. 사이키델릭 록을 우연히 접한 이래로 음악에 첫발을 내디딘 나는, 취미 밴드로 활동하며 다양한 밴드 음악을 접하고, 클래식 공연장에서 근무하며 순수음악에 대한 얕은 지식 또한 쌓아왔다. 많은 것을 알지 못하던 우물 안 개구리에서 출발해 음악에 있어서는 퍽 넓게 제 세상을 확장한 일종의 자부심이 있던지라, 넓고 얕은 나름의 취향을 기반으로 음악을 탐미해 왔건만, 이번 SEAC의 공연을 보고 또 다른 지평을 목격하고, 열게 된 기분이었다.
SEAC의 공연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고, 이에 나는 배움을 얻겠단 포부로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또한 기존에 즐겨 들어온 만큼 친숙했던 '형식적인 틀을 고수하는 음악'들에게서 느껴볼 수 없었던 감정이 들었다. SEAC이 선보인 <In C>에 대한 감상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였다. 고조되는 듯싶다가도 잔잔히 가라앉기를 반복하다가 기별 없이, 그러나 확실하게 끝을 맺었다. 첫 회차 때는 흐름을 파악할 새 없이 그저 이끌려갔던 것 같다.
또한 낯섦에서 오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그나마 친숙한 기타의 연주와 움직임에 대체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감상했다. 그 결과 제법 많은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를테면 비일상적인 소품들도 연주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등의 것들이었다. 현대의 예술가는 텅 빈 초록색 틴케이스, 그리고 튜너로도 다양한 질감의 음색을 창조해 낸다. 일상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기획은 시작된다던 모 감독님의 조언이 떠오르는 밤이었다. 어쩌면 예술 자체가 그러하지 않을까. 내 곁에 놓인 작은 물건 하나, 귓가의 소리 하나도 내가 새로이 발견함으로써 충분히 음악적 쓰임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다.
테리 라일리와 스티브 라이히 이후 현대음악은 '미니멀리즘 음악'의 태동으로써 음악적 변곡점을 맞이했다. 많은 작곡가의 손길을 거치며 미니멀리즘과 페이징 기법은 더욱 정교해지고 다양한 층위로 켜켜이 쌓여가며 발전하고 있다. 기존 음악에서 마음 가는 대로 음의 조각들을 채취해 이리저리 이어 붙인 이번 SEAC의 시도 역시 현대음악의 진보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이번 공연은 작곡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준 셈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구성의 3회차를 관람하며 악기 개개의 매력 또한 포착할 수 있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단언컨대 '피콜로'였다. 고음역에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음색을 가진 이 악기는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연주가들이 소통하고 호흡을 나누며, 하나의 소리로 어우러지는 와중에도 존재감은 엄청났다. 느슨해지는 순간마다 긴장감을 더해주고, 새로운 패턴으로 관객을 쉬이 이끌었다. 편성은 물론이고 다른 악기들 역시 개성이 뚜렷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하나, 가장 큰 알맹이인 음악을 두고 보더라도, SEAC의 지난 공연을 구성한 모든 요소가 서로를 잘 보조하고 있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편안한 공연장의 분위기는 연주에 빠르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무대의 뒷배경으로 있었던 커다란 거울은 열심히 감상 중인 관객들을 비춰주어 관객도 공연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을 몸소 느끼게 해주었다. 이는 어쩌면 사실일 것이다. 즉흥과 우연을 큰 골조로 한 SEAC의 실험에 참여한 관객 개개인도 무대를 구성한 소품의 일부이며, 회차마다 다른 과정과 결말을 내는 연주 방식과 마마찬가지도 회차별로 그 순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과 일회성을 관객이 부여받음으로써 3일에 걸쳐 펼쳐진 무대들은 서로 절대 같지 않은 각각의 무대로서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SEAC이 선사한 음악에 관한 예찬 외에 또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공연 전후로 보인 예술가 한 명 한 명의 인간적인 모습들도 기억 한 편에 깊게 남아있다. 올해로 27번째 해를 맞이하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가장 큰 취지이자 의의는 다양한 예술가들을 관객에게 소개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에도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24를 통해 이러한 자리가 견고히 지속되고 예술가들이 계속해서 실험적인 창작 활동을 마음껏 펼치는 데 도움받아 세상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끝으로 작년 8월 고라니특공대에서 목격한 SEAC은 예술을 사랑하는 순수한 청년들이었다. 이들이 앞으로도 멋진 행보를 보여주길 진심으로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외부 필자 문소현
-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졸업
- 밴드 EO 기타리스트
- 2023 서초뮤직앤아트페스티벌 기획 공연 매니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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