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성악가이자 음악학자인 김애란 박사가 폴란드 최고 권위의 예술 교육기관인 국립 쇼팽음악대학교(Uniwersytet Muzyczny Fryderyka Chopina, 이하 UMFC)의 성악·연기학부 학장(Dziekan Wydziału Wokalno-Aktorskiego)으로 공식 임명됐다. 이는 폴란드 고등교육기관 역사상 외국인이 학장직에 임명된 첫 사례로 기록되며,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 유럽 예술교육계의 구조적 전환점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소프라노 김애란, 사진제공=UFMC

김애란 박사는 계명대학교와 폴란드 국립 쇼팽음악대학교의 공동 교육 프로그램인 ‘계명-쇼팽 음악원’에서 학사 과정을 시작한 후, 폴란드 국립 쇼팽음악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연이어 취득하며 폴란드 음악계에서 전문성과 입지를 다져왔다. 세계적인 소프라노인 에바 이지코프스카-리핀스카(Ewa Iżykowska-Lipińska)와 크리스티나 쇼스텍-라드코바(Krystyna Szostek-Radkowa) 교수에게 사사받으며 동·서유럽의 성악 기법과 예술 철학을 폭넓게 체득한 그녀는, 학문과 무대에서 모두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해왔다.

김애란 박사는 바르샤바 왕궁에서 열린 파데레프스키 전 총리 취임 90 주년 기념 음악회, 브로츠와프 ‘빈 음악제’, 폴란드 크리니차 여름음악제, 쿠웨이트 챔버 필하모닉 초청 무대 등 다수의 국제 무대에서 솔리스트로 활약했으며, 오페라 작품에서는 ‘라 보엠’의 미미, ‘라 콘타디나’의 스친틸라, ‘돈 조반니’의 돈나 엘비라 등 주역을 맡아 유럽 관객의 찬사를 받았다.

또한 김애란 박사의 진정한 위상은 예술을 넘어 교육과 문화 외교의 가교 역할까지 아우르는 활동에서 빛을 발한다. 그녀는 2009 년부터 폴란드 국립 쇼팽음악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성악과 내에서 외국인 학생 대상 마스터클래스, 커리큘럼 혁신, 학생 정착 지원 등의 실무를 주도해 왔다. 특히 동양인 유학생 전담 코디네이터로서 수많은 학생들의 예술 여정을 뒷받침했으며, 동시에 유럽 교육 제도 안에서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장해 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문화외교 분야에서도 그녀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2008년 이후 주폴란드 대한민국 대사관 및 한국문화원과의 협력을 통해 27회 이상의 한국 음악회 및 공동 공연 프로젝트를 기획·주관했으며, 2019년에는 바르샤바 드라마티츠니 극장에서 열린 국립국악관현악단 초청 공연에서 솔리스트로 무대에 올라 한국 전통 정서와 클래식 사운드를 결합한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유럽 관객에게 선보였다.

이러한 다양한 공로를 인정 받아, 김애란 박사는 지난 2024년 폴란드 문화부로부터 ‘폴란드 문화공로훈장(Medal Zasłużony dla Kultury Polskiej)’을 수훈했다. 이는 외국인 음악인에 대한 예우가 아닌, 폴란드 문화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문화 자산’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수훈이다.

이번 학장 임명과 관련해 김애란 박사는 “이 자리는 단지 저 개인의 영예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언어로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온 수많은 여정의 결실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앞으로는 폴란드와 한국, 나아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음악교육 및 공동 창작의 플랫폼을 확장하고 싶습니다”라며, “특히 성악 교육에 있어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동시대 음악의 실험정신을 균형 있게 아우르는 학부 운영을 지향할 계획입니다”라고 포부를 전했다.

김애란 박사의 이번 임명은 단지 개인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유럽 예술교육계가 국적이나 출신이 아닌, 예술적 역량과 교육적 비전을 갖춘 인물에게 리더십을 부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동시에 예술, 교육, 외교라는 세 영역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온 한 한국인 음악인의 궤적이 세계 무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명확히 증명하고 있다.

한편 김애란 박사는 오는 2026년, 윤이상·장은호·이상준 등 한국 작곡가들의 대표 가곡을 수록한 음반을 폴란드 국립 쇼팽음악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쇼팽 프레스(Chopin Press)를 통해 발매할 예정이다. 이 앨범은 폴란드 국립 쇼팽음악대학교 콘서트홀에서 학과 간 협업으로 제작되며, 한국 현대 성악곡의 예술성과 언어적 정서를 유럽 청중에게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동시에, 한국 가곡을 폴란드가 역으로 소개하는 첫 대형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다. 김애란 박사의 학장 임기는 2028년까지이다.

클래시안 이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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