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미완의 공연을 조명하는 '서치라이트' 남산예술센터에서 선보여

이현승 기자 승인 2020.07.01 10:22 | 최종 수정 2020.07.01 10:46 의견 0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김종휘) 남산예술센터는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한 차례 연기됐던 <서치라이트(Searchwright)>를 오는 8일(수)부터 18일(토)까지 선보인다고 밝혔다.

사진제공=서울문화재단
사진제공=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가 2017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서치라이트>는 작품의 아이디어를 찾는 리서치 단계부터 무대화에 이르기까지 창작의 모든 과정을 관객과 공유하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다. <서치라이트>를 통해 쇼케이스, 낭독공연, 공개 토론, 워크숍 등 다양한 형태의 실험과 도전의 무대를 만날 수 있다. 관객과 예술가, 기획자는 시연된 작품들이 정식 공연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발전 가능성을 찾는다. 올해 <서치라이트>는 지난 1월 진행한 공모를 통해, 접수된 95편의 작품 중 쇼케이스 4편, 리서치 2편, 렉처 퍼포먼스 1편 등 최종 7편을 선정했다. 여기에 극장이 기획한 낭독공연 1편을 추가해 총 8편을 선보인다.

당초 3월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던 8편의 작품들은 프로그램이 연기되면서 4개월 동안 작품 개발과 확장의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의 변화를 겪고 있는 창작자들의 경험과 생각들을 반영해 공연의 형식, 주제 등이 대폭 수정됐다. 올해 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과정과 고민들을 관객과 함께 공유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창작 방법과 공연예술의 방향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세부 작품으로는 ▲연극에 대한 고민과 청년세대의 불안을 젊은 작가의 발랄한 감수성으로 그린 ‘기계장치의 신’(낭독공연) ▲신이 블로그를 쓴다는 설정으로 한국사회의 여러 단면을 탐구하는 ‘@GODBLOG(갓블로그)’(쇼케이스) ▲일상의 불확실성과 판타지를 극단 특유의 무대 언어로 풀어낸 ‘무릎을긁었는데겨드랑이가따끔하여’(쇼케이스)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미래 기념비 탐사대’(리서치) ▲3D 사운드 기술로 새로운 무대 실험에 도전하는 ‘귀쫑긋 소셜클럽’(쇼케이스) ▲한국 최초의 여성 극작가 김명순과 그의 작품을 조명한 ‘백 년 만의 초대: <의붓자식>, <두 애인>’(렉처 퍼포먼스) ▲서커스를 통해 이 사회의 재주부리는 곰을 고찰하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파업-’(리서치) ▲흐르지 못한 시간들이 맴돌고 있는 드라마센터를 둘러싼 여러 쟁점을 살펴보는 ‘망할 극장’(쇼케이스) 등 8편이 차례로 이어진다.

올해 <서치라이트>의 첫 번째 작품 낭독공연 ‘기계장치의 신’(작 김상훈, 연출 이철희, 코너스톤, 8일)은 남산예술센터의 상시 희곡 투고 시스템 <초고를 부탁해>에서 발굴된 작품으로, 신예 작가 김상훈의 첫 장편 희곡이다. 심사 당시, ‘젊은 세대가 감당해야 할 미래와 운명에 대한 불안감과 소외를 재치 있는 통찰로 보여준 작품’이라 평가받으며 올해 <서치라이트>의 극장 기획 낭독공연으로 구성됐다. 20대 작가의 불안으로 시작된 극은 8세 아이, 50대 부모님, 70대 노인의 젊은 시절, 부시맨 가족, 아리스토텔레스 등 시공간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집단의 시선으로 인간의 실존과 불안을 담아낸다. 초고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하고,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작품을 확장시키기 위해 낭독공연으로 먼저 선보인다.

두 번째 작품 쇼케이스 ‘@GODBLOG(갓블로그)’(원작 재닛 윈터슨, 공동 재구성, 연출 박현지, 그린피그, 9일)다. 신이 블로그를 쓴다는 설정으로 성경의 창세기를 고쳐 쓴 동명의 소설『God Blog』(재닛 윈터슨 작)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에 사는 신이라면 어떻게 블로그 포스트를 작성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재구성한다. 다양한 모습의 신들이 써 내려간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 인간의 형상을 한 신이 한국인이라면, 한국, 아시아, 현재를 성경 속 상황과 비교해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이를 쇼케이스와 대담 형식으로 풀어낸다. 극단 그린피그가 원작을 공동 재구성하고, 세대 차이, 노동, 청년 등 한국사회에 대한 관심을 무대화하는 작업을 이어 온 박현지가 연출을 맡는다.

쇼케이스 ‘무릎을긁었는데겨드랑이가따끔하여’(작·연출 김풍년, 작당모의, 10일)는 2019- 2020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 NEWStage>에 선정된 김풍년 작/연출가의 작품으로, 동전이 모자라 자판기 커피를 먹을 수 없어 절망했던 작가의 경험에 판타지를 섞어 극화했다. 극은 주인공의 꿈, 환상, 과거를 오가며 전개된다.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이 대적한 하얼빈역과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거쳐 자판기 내부를 통과하는 환상적인 여정을 통해 ‘대체할 수 없는 커피 한 잔’에 담긴 우주대서사시를 무대 위에 펼친다. 지난 5월 스튜디오SK에서 초연을 마친 이 작품은 이번 쇼케이스를 통해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본토와 이방인, 날것과 익숙한 것, 무대와 객석 등의 경계를 허물어 좀 더 확장된 무대의 가능성을 찾아본다.

리서치 ‘미래 기념비 탐사대’(공동창작, 창작그룹 MOIZ, 11일)는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들이 모인 창작그룹 MOIZ의 <구 광주적십자병원>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창작자들은 프로젝트 수행과정에서 수집한 답변 속에서 기억의 층위를 발견하고, ‘이제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할 필요성을 느꼈다. 1980년이 아닌, 1993년부터 2020년까지 광주에 살고 있는 그들이 마주한 5·18에 관해 관객과 함께 공개 토론하고, 극적 환상의 힘을 빌려 토론의 공연화를 시도한다. 창작그룹 MOIZ의 도민주, 문다은, 양채은, 전하선이 공동으로 창작했다.

사진제공=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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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케이스 ‘귀쫑긋 소셜클럽’(공동창작, BLANK LAB, 15일)은 가상현실(VR) 콘텐츠가 발달하며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3차원 오디오 믹싱(VR Audio Spatializer Mixing) 기술을 활용해 남산예술센터 극장을 소리로 경험해보는 작품이다. 2019 삼일로창고극장 <랩(LAB)>을 통해 ‘3D 사운드 기술을 통한 극장실험’을 발표하며 창단한 창작집단 BLANK LAB이 기획하고 제작했다. 첫 시도로 앰비소닉 오디오(Ambisonic Audio) 기술을 사용하여 삼일로창고극장을 서울 어딘가의 공간으로 바꾸고, 배우 없는 무대에서 청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공연 관습을 시도한 바 있다. 이번 쇼케이스에서는 소극장에서의 실험을 확장하여 중규모 이상의 극장에서 사운드로 공간을 구획화하고 극장 곳곳에 만들어진 소리의 공간들을 이동하면서 관람하는 사운드 시어터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리서치 ‘백 년 만의 초대: <의붓자식>, <두 애인>’(작 김명순, 연출 윤사비나, 문화다방이상한앨리스, 16일)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근대 문학 작가이자 극작가인 김명순의 삶을 조명해 그의 두 희곡 <의붓자식>과 <두 애인>을 무대화하기 위한 작업 과정을 담는다. 식민지, 여성, 성폭력 피해자로 압축되는 김명순의 억압된 삶과 자전적인 성격의 희곡 두 편에 담긴 문제의식에 주목한 그동안의 연구 내용을 렉처 퍼포먼스 형태로 발표함으로써 무대화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연극, 무용, 전시, 음악 분야에서 연출, 극작가, 배우, 안무가로 활동 중인 윤사비나가 연출을 맡는다.

리서치 ‘재주는 곰이 부리고’(작·연출 원지영, 원의 안과 밖, 17일)는 물리적으로, 주제적으로 극장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연극성을 탐구해 온 원지영이 작/연출한 작품이다. 지난 2년 간 진행한 서커스에 관한 리서치 작업으로, 근대-과거-부조리-전통언어를 파괴하며 앞으로 시작될 본격적인 작품 개발의 출발선에 앞서, 리서치 내용을 공유하고 하루 동안 극장을 사용하면서 기예 장치, 빛의 도구, 무대 오브제 등을 테스트 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서커스를 주제로 남산예술센터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실험적인 무대다.

마지막 날 소개되는 쇼케이스 ‘망할 극장’(구성·연출 강훈구, 공놀이클럽, 18일)은 2017 서치라이트에서 처음 발표한 <마지막 황군>의 최종 편으로, 처음 작품을 무대화했던 남산예술센터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진짜 진짜 마지막 황군>(2019)이 드라마센터의 사유화 과정과 설립자 유치진을 비판적으로 다루었다면 이번 작업은 유치진에 의해 왜곡된 시간에 갇혀 극장 곳곳을 배회하는 유령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노동자를 위한 연극을 주장하는 청년 유치진, 검열되어 버려진 희곡, 잃어버린 소품을 찾기 위해 여전히 극장을 헤매는 조연출, 무대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관객이 등장한다. 억압된 찰나의 순간들, 흐르지 못한 시간들이 맴돌고 있는 극장을 구석구석 살펴본다.

<처의 감각>(작 고연옥, 연출 김정, 2017), <두 번째 시간>(작 이보람, 연출 백석현, 2017), <7번국도>(작 배해률, 연출 구자혜, 2018), <왕서개 이야기>(작 김도영, 연출 이준우, 2019) 등은 <서치라이트>를 통해 좋은 평을 받고,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으로 선보인 바 있다. 이밖에도 성북문화재단 복합문화공간에서 공연된 <마지막 황군>(작/연출 강훈구, 창작집단 극과이것, 2017), 문래예술공장에서 전시와 공연으로 선보인 <Turn leap: 극장을 측정하는 작가들>(리서치 장현준, 차지량, 2017), 제18회 서울변방연극제에서 25시간 릴레이 퍼포먼스로 선보인 <25시-극장전>(연출 이경성, 2017) 등이 <서치라이트>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하고 정식으로 무대화됐다.

한편 <서치라이트>는 신작을 준비하는 개인 혹은 단체라면 장르나 형식, 나이에 제한 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열린 프로그램이며, 선정된 작품에는 극장과 무대기술, 부대 장비, 연습실 등을 비롯해 소정의 제작비가 지원된다. <서치라이트>에 참여하는 공연은 남산예술센터 누리집(www.nsac.or.kr)을 통해 무료로 예매 가능하다.

클래시안 이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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