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출판사,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의 독일문학사 고전 소설 ‘게르버’ 국내 첫 번역 출간

게르버, 나치 정부 금서 판정에도 작품 자체의 힘으로 살아남은 독일 문학 소설

이현승 승인 2022.10.31 23:54 의견 0

문예출판사가 독일문학사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소설 ‘게르버-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를 국내에 첫 번역·출간했다.

토어베르크의 첫 소설 ‘게르버’는 프라하 출신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작가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가 1930년, 그의 나이 22세에 발표한 소설이다. 이 책은 프란츠 카프카의 절친한 친구이자 작가인 막스 브로트의 도움으로 출간됐다. 출간 당시 초판 5000부를 인쇄하는 성공을 거뒀으며, 1년도 안 돼 7개국 언어로 번역됐다. 지금까지 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오스트리아 국가문학대상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인정받는 등 대중의 사랑도 받았다.

소설 게르버는 작가 토어베르크가 학창 시절 프라하의 권위주의적인 학교에서 겪은 부정적인 경험을 그린다. 1921년 아버지가 프라하로 전근하면서 토어베르크가 다닌 프라하의 학교는 개혁이 단행된 오스트리아 빈의 학교와 달리, 옛 군주제 시기의 낡은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했다. 당시 교육은 규율과 규범을 내세우며 학생의 자유 의지를 꺾고 순종을 강요했다.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하거나 명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졸업 시험 합격증이 필요한 학생들은 엄청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성적 평가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교사에게 순종했다.

학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토어베르크 소설은 똑똑하고 성숙하지만, 반항적인 학생 게르버의 고등학교에서 마지막 해를 그리며, 권위주의적인 학교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세상은 세 가지 것에 근거한다. 바로 진리와 정의, 사랑이 그것이다”란 소설 서두에 인용된 고대 이스라엘 랍비의 격언은 소설의 화두다. 주인공 게르버는 학교와 실제 인생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한다. 아버지의 말이 옳다면 학교는 세상의 토대인 진리와 정의, 사랑이 있는 곳, 혹은 그것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졸업 시험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간주하고, 교사는 절대 권력을 휘둘러 학생들을 파멸시킨다. 같은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서로 돕기보다는 경쟁을 택하고, 강자로 군림하는 교사의 부당한 행동을 묵인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학교는 진리, 정의, 사랑이란 가치와 무관해 보인다.

한편 출간 3년 후 이 소설은 나치 정부가 ‘사제의 문제를 증오심에 가득 찬 왜곡한 형태’로 그린 것으로 판정해 금서가 됐다. 이어 토어베르크의 모든 글에 금서 판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발표된 지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 소설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청소년기 학교 문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1981년에는 볼프강 글뤼크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다. 장 아메리의 말처럼 폭탄처럼 떨어진 이 소설은 높은 교육열과 입시 경쟁이 어느 곳보다 치열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강렬한 시의성을 갖는다.

저작권자 ⓒ 클래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