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14일(목) 오후 7시 30분 통의동에 위치한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는 6명의 젊은 작곡가들이 첼로를 위해 작곡한 신작이 연주된다. 이번 연주회 <2023 서울 작곡가 쇼케이스(Seoul Composers Showcase)>는 현대음악 창작단체 YEORO(여로)의 콘서트 시리즈 일환으로 진행되는 21번째 연주회이다.
오늘 클래시안은 <2023 서울 작곡가 쇼케이스>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6명의 작곡가 김민성(경희대학교), 이상빈(한국예술종합학교), 이한(한국예술종합학교), 김유신(스페인 바스크 국립고등음악원), 이상준(폴란드 국립쇼팽음악대학교), 이중현(서울대학교)를 만나봤다. 젊은 청년들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반짝거렸으며, 이들이 앞으로 보여줄 창작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안녕하세요, 소개를 간단히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민성 : 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 작곡과에 재학 중인 김민성입니다.
이상빈 : 저는 들리는 것을 만들고, 들라는 것에 대해 글을 종종 쓰는 사람입니다. 최근에는 컴퓨터음악 이론에 관한 글을 쓰고 있고, 소리합성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이한 :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신대방동에 거주하며 작곡가 및 전자 음향 엔지니어로 활동 중인 이한이라고 합니다.
김유신 : 안녕하세요. 저는 작곡가 김유신입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스페인 바스크 국립고등음악원에 재학 중이며, 영월현대음악제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입니다.
이상준 : 안녕하세요, 작곡가 겸 공연 기획자 이상준입니다.
이중현 : 안녕하세요, 현재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재학 중인 이중현이라고 합니다. 원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연주하면서 음악에 입문했고, 작곡뿐만 아니라 'project ensemble O'와 같은 단체에서 연주 활동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표하시는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민성 : 이번에 쓴 작품은 첼로의 소리를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전자 음향을 만들어내고 거기의 소리에 반응하는 비주얼 요소가 복합적으로 합쳐진 형태입니다. 작품 제목으로는 <말의 확산>이라 지었습니다. 우리가 뱉는 말과 인터넷에 써 내려가는 게시물들은 존재하는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순식간에 퍼져가므로 이에 경각심을 가질 것을 시사하는 작품입니다. 말과 인터넷에 올리는 게시물들은 한 사람이나 단체를 해칠 수도 있는 영향력을 가지기도 합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예전보다 더 많은 플랫폼과 사이트와 SNS가 등장하고 각종 모임 또한 다양해지고 많아지고 있으므로 더욱 말과 게시에 조심해야겠습니다.
이상빈 : 유리구슬 제작 과정은 꽤 많은 정제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포가 없는지, 색은 탁하지 않는지, 모양이 매우 둥근지... 신경 쓸 부분이 꽤 많습니다. 지난 3년간 음악의 가장 미시적인 부분인 '톤'에 집중하다 보니, 내가 필요로 하는 정확한 소리를 만드는 과정은 유리구슬 만들기와 같은 순도 높고, 정확한 오브젝트를 만드는 것과 느낌이 비슷했습니다. 이렇듯, 불순물이 가득한 원료를 정제하여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을 남기는 과정은 소리를 만드는 과정과도 닮았으나, 크게 보면 작곡 과정과도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곡에서는 원하는 소리와 형태를 찾아가다 그것이 무너지는 과정을 곡의 형태로, 조금은 긴 호흡 속에 담아봤습니다. 컴퓨터로 합성된 소리는 이 과정을 서포트합니다.
이한 : 이 작품에는 몇 가지의 아이디어가 중첩되어 있는데, 이 중 두 가지를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요소는 스테이지형 게임입니다. <슈퍼 마리오 월드>라는 게임을 예시로 들 수 있겠는데요, 이 고전 명작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가 직접 원하는 무대를 선택해 가며 게임을 클리어해 나갈 수 있다는 (게임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형식은 이러한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두 번째는 제가 전자 음향을 위해 사용하는 Super Collider(이하 SC)라는 언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앞서 말한 첫 번째 특징과도 연결되는데요, SC를 통해 설계할 수 있는 것 중에는 동전 던지기 시뮬레이션이 있습니다. 이것이 작품 타임라인의 가장 큰 단위에 관여하게 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잠시 감춰두겠습니다!)
김유신 : 이 작품은 첼로 독주를 위해서 작곡된 곡으로, 첫 초연은 발렌시아 음악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한창 여행을 즐겨 다녔던 2018년에 우연히 스웨덴 북부를 가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가보는 북극권 지방을 120km가량 걸어 다니면서 그동안 속해있던 사회와 단절감, 또는 해방감을 느껴봤습니다. 마치 그 시간만큼은 ‘명상’하듯이 편안했던 기억이 있는데 흔히 ‘명상’은 매우 정적이며 부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심신을 집중시키는 거라면 저는 훨씬 더 ‘동적’인 ‘명상’을 생각해 봤습니다. 작품 제목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장소’는 없지만 ‘길’은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당시 끝없이 펼쳐져 있는 걷는 길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었고 오히려 ‘장소’라는 단어가 마치 공간에 갇힌 한정적인 느낌을 주게 되어 제가 생각하는 명상은 “길”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첼로의 저음 피치카토와 위에서 연주되는 여러 음은 이러한 “걸음걸이”와 “명상적 이미지” 또는 “시각적인 존재들”을 의미합니다.
이상준 : 이 음악은 제가 도심 속 천년고찰 봉은사에서 예불하며 느꼈던 것을 음표화한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이 '봉은사' 시리즈는 현재까지 두 곡의 플루트 솔로곡과 한 곡의 바이올린 솔로곡으로 작곡하였는데, 이번에는 첼로를 통해 표현을 해보았습니다. 서울의 빌딩 숲 한복판에서 조용하게 잔잔한 빛을 발하는 곳, 이틀 동안 전 그곳에서 스님들과 예불을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소리를 선택하는 데 특히 집중한 부분은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 예불을 드리며 바라본 봉은사의 광경, 끊임없이 수행하는 수행자들의 모습 그리고 좌선 중 느꼈던 저의 호흡입니다. 이렇게 음악으로 풀어낸 이 음악을 감상하실 때는 봉은사에서 묵묵히 매일 예불을 드리는 수행자들의 모습과 명상 중인 누군가를 상상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이중현 : 이번 곡의 제목인 'such disgusting propaganda music(정말로 역겨운 선전가요)'는 올해 여름에 초연된 거문고와 피아노를 위한 'MY PENTATONIC ENEMY(너를 버리고 가시는 길)'로부터 파생된 작품인데요. 둘 다 '경기 아리랑'의 위선적이고 선전적인 성격을 꼬집고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경기 아리랑은 비록 1930년대에 처음으로 채보되고 기록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악곡의 형식, 장단, 음소재 어느 것 하나 한국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게 이 형태는 아일랜드 음악에 더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인데요. 이 곡이 '한민족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선전되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 밖에 자아내지 않습니다. 한국적이지 않은 가락이 한민족을 대변한다고 하며 쓸데없는 애국심을 자극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죠. 하지만, 되려 한국 전통 음악의 흔적이 없기 때문에 더 잘 먹히는 것 아닌가도 싶습니다. 제 곡은 아리랑으로부터 파생 및 왜곡해 만든, 5가지 정도의 주제들을 가지고 작업했는데요. 끊임없는 반복과 연주자에게 강제되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여러 섹션들로 인해 생각보다는 듣기 편하지 않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에 겁먹지는 마시고, 이러한 폭발적인 에너지를 통해 카타르시스 역시 느껴 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이번 작업을 진행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김민성 : 소리와 비주얼이 어울리도록 작품을 구성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비주얼을 구성할 때 작품의 주제가 너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너무 강렬하지 않게 소리에 보충되는 요소로 존재하기를 원했는데 생각보다 이 작업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중간에 비주얼 작업을 포기할지 생각도 했지만, 자체적으로 만든 'Fluid 시뮬레이터'를 조금씩 변형해 가며 다행스럽게도 제가 원하는 모습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이상빈 : 작업 기간이 극히 짧았다는 점이 가장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간 부분에 '1:2:1:4:2' 비율의 리듬가를 점차 형성해 나가는 부분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박자를 몇 번 잘못 세어서 중간에 세 번이나 다시 쓴 일이 있었던 것도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한 : 아무래도 형식적인 실험이 동반되다 보니, 이를 위해 전체적인 타임라인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 역시 작곡이기 때문에, 피하지 않고 부딪혀보기로 했습니다!
김유신 :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이 작품을 연주해 주시는 연주자 선생님의 노고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준 : 저는 이번 공연에 작곡과 공연 기획 둘 다 동시에 참여하는 것이 다소 힘이 들었던 거 같습니다. 초연곡이라 작곡에도 신경을 썼어야 했으며 동시에 초청 연주자님과 초청 작곡가님 섭외부터, 공연 장소 대관, 홍보물 제작, 티켓 판매 등을 진행했어야 해서 체력적 어려움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이중현 : 이 곡 역시 '문화유용(cultural appropriation)'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국악 공부를 아직도 깊이 있게 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동양 음악의 탈을 쓴 서구 음악을 서양 악기를 위한 곡을 쓰면서 조롱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화유용의 예시이자 '잘못된 정보에 의한 반-선전 운동(misinformed anti-propaganda movement)', 이 곡 후반부의 한 섹션의 제목 그리고 차기 '프로파간다 시리즈' 작품들의 제목이기도 합니다)에 지나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위험성 역시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에서의 민족성의 개념 자체를 조롱한다는 것 또한 그것을 논함으로써 그것을 작품 안 세계로 들여와 '오염시킬' 수 있다는 위험성으로 인해 이 작품이 제 음악관을 훼손하지 않으리라는 보장 역시 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이 작곡가님의 음악을 감상할 때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듣기를 원하시나요?
김민성 : 첼로가 연주하는 음들은 마치 말하듯이 구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자 음향에는 리버브가 강하게 적용되어 있으며 비주얼 또한 소리에 맞추어 액체가 확산하는 듯한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이 세 가지의 복합적인 요소들의 합을 음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빈 : 실체가 없는, 옅은 안개 같은 소리에서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찾아나가는 과정에 집중해 주세요.
이한 : 가능하면 감상의 형태를 다양하게 열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정말 편안하고, 실소를 유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이러한 작품도 있을 수 있구나’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유신 : 저는 개인적으로 관객분들께서 이러한 작품을 매우 생소하게 여기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께서는 이러한 양식의 작품에 익숙하시겠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두 번째 답변에 언급 드린 것처럼 작품 설명은 그저 참고만 하시되 여러 소리의 향연이라 생각하시고 감상하시거나 여기서 주로 쓰이는 현의 뜯는 소리, 활로 노는 소리 이렇게 두 가지만 집중해서 따라만 가셔도 충분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상준 : 음악이 주는 인상 그대로를 느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만약 봉은사를 방문해 보셨거나, 좋아하시는 절이 있다면 그런 장소를 상상해 보셔도 저와 음악적 공감대 형성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이중현 : 저는 여기에서 아리랑의 흔적을 찾는 것도 좋지만, 관객 분들께서 이 음악을 어떻게 들을 지에 대한 어느 강제라도 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프로파간다-화' 되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은 불친절하더라도 주체적으로, 제가 어떻게 음악을 썼는지, 연주자께서 어떻게 연주하시는지 직접 시청각적으로 경험 함으로서 '탐험'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곡가님의 창작 욕구를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
김민성 : 영감과는 형태가 먼 작은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합니다.
이상빈 : 보통은 하고 싶은 말을 에둘러 멋지게, 혹은 더 강력하고 처연하게 전달하고 싶을 때 곡이 쓰고 싶어집니다.
이한 : 저는 평소 살면서 겪는 모든 형태의 경험을 매개변수 단위로 분해해 보면서 그것들의 새로운 조합을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오는 것이 질문일 수도 있고 답변일 수도 있는데요, 두 경우 모두 저에게는 좋은 아이디어 내지는 재료가 됩니다. 특히 최근에는 고전 작품들을 그 당시 시대에는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단위들로 쪼개어 보는 것을 종종 해보고 있습니다.
김유신 : 대개 창작 욕구는 수많은 시간 속이라는 모래 바다에서 찾아내는 진주와 같습니다. 여러 사건, 이슈, 미학 등이 점철되거나 수많은 요소가 지나가는 도중에 발견되는 것들은 그 규모나 내용이 다릅니다. 다만 근래에 저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적 요소에 주목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예를 들자면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설전이나 시위, 정치적 요소들을 자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장이 곧 하나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요소들 이외에도 훨씬 더 문학이나 자연현상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이상준 : 저는 제 작품을 통해 거울처럼 저 자신을 바라보곤 합니다. 처음 작곡을 시작하고 몇 년 동안 곡을 쓸 때는 저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때의 기분은 정말 얼룩이 가득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울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제 눈, 코, 입이 어디에 달려있는지도 안 보이는 그런 거울이요. 하지만 제 주변에서부터 작은 아이디어를 얻고, 부족하더라도 꾸준히 제 음악을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저는 조금씩 제 마음속 거울의 얼룩이 닦여나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앞으로 작업할 저의 작품들 또한 저에 관한 것들과 제가 친숙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많이 담길 것 같습니다. 제 음악적 활동을 통해 제 마음속 거울을 반질반질하게 닦아내어 온전한 저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싶거든요.
이중현 : 저는 음의 논리보다는 '연주 행위의 논리'로 작곡에 임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연주 행위의 주체들-연주자들과의 만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연주자들과의 협업과 교감을 통해 음악을 작곡하리라는 욕구를 얻고, 그들을 위해서 작곡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작곡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민성 : 세상에 도움이 되는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작품성이 중요한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작품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사람마다 해석에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함부로 세상에 내놓지 않았으며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 과연 이것이 지금 세대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지, 비문이나 개연성 없는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충분한 고민과 사유가 있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므로 이 또한 예술이 됩니다.
이상빈 : 사회와 그를 구성하는 개인들을 생각하게 만들어, 세상의 시야를 넓혀 주는 것이 예술이지 않을까요?
이한 :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 최근 저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인 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작품은 생각할 지점들을 많이 만들어내며, 이는 절대 그 작품의 장르 내지는 형태에 국한되어 발생하지 않습니다. 감상자가 다른 측면에서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김유신 : 아마 정답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예술은 저 자신을 위해서 살다가 죽는 것이고 저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하나의 “의견 표명”을 “예술”로 치환하고 싶습니다. “예술”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 접근하면 무언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서사가 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여러 매개체를 통해 바꾸는 것인데, 음악은 시공간의 분야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을 훨씬 더 극적인 요소로 풀어내고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무언가 말하고 사람들에게 적어도 나의 입장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아마도 제가 생각하는 “예술”의 무언가가 아닐지 생각됩니다.
이상준 : 어렵고 정의하기 힘든 질문이지만, 저에게 예술이란 수도승의 자세로 얼룩진 거울을 닦고 닦아내고 그 거울에서 제 얼굴을 찾는 작업입니다. 개인적으로 치유의 개념도 포함되며, 아직도 잘 모르겠는 제 내재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자아 성찰을 위한 행위 중 하나입니다.
이중현 : 예술은 예술가가 본인의 정신적 측면을 이용해 감각적 매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건축하는 행위 일체를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인식하는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인 경험들이 작품의 시작점이 될 수 있겠지만, 결국 그것들은 예술 작품이 작가의 손에서 '발생'함으로써 산화됨과 동시에, 작품 내적인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하는 토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들이 작품의 해석에 주요한 영향을 끼치게 만드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요. 이 작품 내적 세계를 제삼자가 감상하면서 주체적으로 내면화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창작자의 의무겠고요.
그렇다면 작곡가로서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쓰시고 싶으신가요?
김민성 : 너무 한 곳에 매여 있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작품의 주제로 삼아보고 싶습니다.
이상빈 : 앞으로는 양동 전략으로 가려 합니다.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해 사회에 보이는 작업, 그리고 다분히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의도를 담아 관객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곡으로요. 특정 매체에 특별한 흥미를 더 가지고 있다거나 하지 않아서, 곡의 형태나 표현 수단은 앞으로도 작곡 과정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예정입니다.
이한 : 최근에는 ‘레트로’라는 개념에 대해 개념적•미학적 탐구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의 작업 역시 이러한 탐구에서 출발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유신 : 많은 실험 과정이 있었지만 그동안은 문학이나 자연 현상적인 면에 집중을 해왔다면, 저는 앞서 창작 욕구(5번 질문)에서 언급 드린 바와 같이 '사회 현상적 요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재 드레스덴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인 작곡가 스테판 프린스(Stefan Prins) 역시 이러한 사회 현상적인 요소에 주목하는 작품인 '세대 죽이기(Generation Kill)'는 현재 사고방식에 여러 가지 영향을 끼쳤는데, 주로 자연 현상적인 요소를 중점적으로 탐구해 온 저에게는 훨씬 더 사회 참여형 요소의 작품이 앞으로 많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유는 그동안 제가 시도해 보지 못한 또 다른 맥락이자 세계이기 때문이고 깊게 탐구해 본 영역이 아니기에 더 흥미가 가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기존에 진행되어 왔던 자연 현상적 음악 탐구 방식 또한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 나갈 전망입니다.
이상준 : 온전히 저를 느끼고 투영시킬 수 있는 곡들을 쓰고 싶습니다. 관객들도 ‘어, 이거 이상준이 쓴 거 아니야?’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저 자신도 시각적으로 악보를 보고 청각적으로 음악으로 들을 때 ‘아, 이거 참 나답다’라는 말이 나오게요.
이중현 : 그것에 대해 제 모토는 오직 하나입니다. 어제 끝세로줄을 그은 작품보다는 나은 작품을 쓰자는 것이죠.
현재로서 앞으로의 음악가로서 또는 인간으로서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또는 향후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김민성 : 뭐든 끊이지 않고 배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발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상빈 : 단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창작을 지속하는 것일 겁니다. 일단은 내년 2월 말일에 37관 생황과 피아노, 전자 음향과 소품들을 위한 곡 '떠난 자들을 그리는 작고 엄숙한 노래들' 이 발표됩니다. 현재 이 곡 작업 중이기도 하고요. 어찌 됐든 사회에 좀 쓸모 있는 작곡가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입니다.
이한 : 여러 방식의 다 측면적 탐구를 통해 생각을 더 많이 확장하여, 통상적인 음악 안에서는 자주 다뤄지지 않던 것들을 끄집어내어 음악으로 다뤄지도록 만드는 것이 현재의 목표입니다. 연말이 되면서 내년 상반기까지의 많은 일들이 정해지게 되었는데요, 그 작업 하나하나를 적어도 의미 있게 완수해 내는 것이 당장의 목표입니다. 저는 이상하기 위해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통해 흥미로운 방식으로 인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유신 : 세대는 4차산업과 AI 등 여러 시대적 변화에 맞춰가야 하는 커다란 흐름 속에 있습니다. 그동안 작곡가와 연주자는 서로가 경쟁 관계로 이어져 온 것도 있지만 앞으로는 서로 힘을 합쳐서 나아가야 할 시기가 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작곡가로서 서로의 작업물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것을 넘어서, 젊은 세대에게 많이 주어지지 않는 작품 초연 기회를 주기 위해 여러모로 협업 중인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스스로가 타인에게 많이 베풀 수 있고 또한 저 자신을 굳게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방향을 만들고자 합니다. 저는 현재 영월현대음악제 감독으로 있으면서 연주자와 작곡가들에게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고자 여러 사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2025년에도 주은혜 작곡가님을 비롯하여 여러 작곡가 및 연주자분을 초청하고자 합니다.
이상준 :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폴란드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음악가, 미술가, 무용가, 건축가, 행정가 등 다양한 사람들과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고민을 나눠보곤 합니다. 다가오는 12월 29일에는 부천아트센터에서 두 곡을 창작 가곡 발표가 예정되어 있고, 1월 28일에는 폴란드에서 클라리넷과 꽹과리를 위한 작품을 발표합니다. 또한 내년 여름, 스페인에서는 바르셀로나 모던앙상블에 의해 제 신작이 연주될 예정이며 폴란드에서는 저를 주축으로 폴란드를 대표 현대음악 앙상블 '해시태그 앙상블'과 공동으로 다양한 작곡가들을 선보이는 작곡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중현 : 저는 앞으로 조금 덜 바쁘게 살면서 제 작품을 어떻게 쓰고 조직할 것인지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고 싶네요. 학부생 생활의 마무리도 다가오고 있고, 저도 제 건강이 예전 같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저는 제 작품에 대해 더 긴 시간 동안 심사숙고하고 정성스럽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프리미엄 콩나물을 키우는 농부같이 공들여 음악을 씀으로써 작품의 내면세계의 작동 원리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기도 하고요. 제 다음 계획은 생황과 비올라를 위한 작품을 쓰게 될 것 같고, 그다음으로는 연주단체 거리(Geori)를 위한 '잘못된 정보에 의한 반-선전 운동'을 쓰게 될 것 같고, 마지막으로는 백은비 플루티스트를 위한 협주 작품 'fable(우화)'에 집중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연주회에 오시는 관객 여러분께 하실 말씀이 있을까요?
김민성 : 제 작품은 뜬구름을 잡는 작품입니다. 제 작품이 다루는 주제는 사람들이 제법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입니다. 이 작품이 경각심이 지속되도록 이어주는 잠깐 지나치는 다리와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들으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빈 : 프로그램 노트인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깨지진 않...을까?" 이 한마디면 충분할 듯합니다.
이한 : 이번 연주회에서 같이 하게 될 작곡가분들 모두 너무나도 훌륭한 작업을 하시는 동료들입니다. 다양한 작곡가들의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 보시는 것은 분명 의미 있고 재밌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김유신 : 현대음악이 매우 낯설고,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어려움을 인정하는 것부터 소통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학부 시절에도 절대 쉽지 않아서 스스로에게도 당혹스러웠던 경험이 있었고 현재도 온전히 체화하는 것에 있어 익숙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학이나 예술이나 다 모두 사람이 만들었고, 사람이 만들었기에(Artificial) 예술(Art)입니다. 사람이 만든 이상 그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절대로 우리가 넘볼 수 없는 세상이라든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소한 일상의 단편부터 누군가 무심코 지나친 요소들을 찾아내서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이기도 합니다.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그냥 ‘이러한 세상도 있구나’ 정도로 오셔서 감상하시고, 부담 없이 오셔서 부담 없이 감상하시고 가시길 바랍니다.
이상준 : 첼로를 활용해 여러 젊은 작곡가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연주회입니다. 들으러 와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꾸준히 젊은 창작자들에게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이번 음악회에 함께 해주시는 홍승연 첼리스트, 미워시 벰비노프 교수님과 공연을 함께 준비해 준 모든 작곡가분께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중현 : 이번 연주도 즐겁게 감상해 주시고, 그 누구에게도 끌려다니지 않는 주체적인 감상자를 넘어 주체적인 인간이 되도록 다 같이 노력해 봅시다.
한편 작곡가 김민성ㆍ이상빈ㆍ이한ㆍ김유신ㆍ이상준ㆍ이중현이 참여하는 <2023 서울 작곡가 쇼케이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현대음악 창작단체 여로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클래시안 이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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