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연극단체 극단 ‘배우, 관객 그리고 공간’이 프랑스 아비뇽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예술 축제 ‘아비뇽 오프 페스티벌(Avignon Off Festival)’에 공식 초청됐다. 이들은 오는 7월 5일부터 14일까지 ALYA Theatre Salle A 무대에서 창작극 ‘마이 디어, 헬렌(My Dear, Helen)’을 총 9회 공연한다.

이번 초청은 부산문화재단이 주최하고, 극단이 제작한 작품이 해외 극장 관계자들의 추천을 받아 성사됐다. 지역에서 시작된 창작물이 국제 공연 시장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사례로, 부산 연극계에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이 디어, 헬렌’은 시청각 장애를 지닌 위인 헬렌 켈러의 삶을 비언어극 형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언어 대신 신체, 감각, 움직임을 활용한 무대 언어를 통해 관객과 깊이 있는 감정 교류를 시도한다. 작품은 헬렌의 어린 시절부터 활동가로 성장하기까지의 여정을 세 장면으로 구성해 무대에 올린다.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배우가 동일한 인물을 함께 연기함으로써 감각의 경계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표현 방식을 선보인다. 이 연극은 단순한 전기극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욕망인 ‘소통’을 감각적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비언어극 장르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초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부산국제연극제를 비롯해 뉴욕, 콜롬비아 보고타 여성평화축제 등 세계 유수의 무대에 초청되며, 작품성과 완성도를 꾸준히 축적해왔다. 2023년에는 한·미·일 예술단체가 공동으로 제작에 참여하며 국제 협업의 모범 사례로도 주목받았다.

이번 아비뇽 초청은 ‘장르적 실험성’과 ‘사회적 포용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성과다. 나아가 △비언어극의 국제 유통 가능성 △장애·비장애 통합 예술의 포용 가치 확산 △지속 가능한 글로벌 공연예술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부산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번 아비뇽 진출은 지역 창작공연의 새로운 유통 모델이자, 부산이 국제 공연예술 도시로 도약하는 데 실질적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해외 극장 및 예술단체와의 연계를 강화해 창작자들에게 더 넓은 무대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통과 실험, 감각과 감정, 그리고 경계를 허문 ‘마이 디어, 헬렌’의 아비뇽 무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한국 창작극의 가능성을 알리는 강한 울림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