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 범일로에 위치한 전시공간 ‘아이테르 범일가옥’에서 시각예술가 김휘의 개인전 ‘DEAR!?’가 오는 7월 15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관람자에게 하나의 결론이나 감정의 정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흘러가고 머무는 공간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관람자가 자신만의 질문과 응시를 시작하도록 유도한다. 전시 제목 ‘DEAR!?’는 누군가를 부르며 동시에 망설이는 문장이다. 다정함의 시작을 알리는 ‘DEAR’ 뒤에 감탄과 의심이 교차하는 기호가 덧붙여지면서, 결국 끝내 완성되지 못한 감정의 상태 자체가 작품 세계의 중심 언어로 작동한다.

김휘는 그간 감정의 구조와 감각의 층위를 탐구하는 작업을 지속해온 작가다. 정보와 이미지가 쏟아지는 시대에 그는 거대한 담론보다는 오히려 사소하고 은밀하게 개인 내부를 진동시키는 감정의 떨림에 주목해왔다. 이번 전시 역시 회화와 오브제, 영상, 사운드, 그리고 인공지능 분석에 이르기까지 매체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감정을 단일한 언어나 서사로 환원하지 않고, 유동적이고 다층적인 경험으로 풀어낸다. 각 작품은 감정을 다루되 설명하지 않으며, 응시와 체험을 통해 관람자 스스로 감정의 이름을 붙여보도록 권한다.

전시가 열리는 아이테르 범일가옥은 오래전 주거지로 사용됐던 공간으로, 표면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이 이번 전시의 정서적 배경이 된다. 작가는 이 장소를 ‘감정의 해석이 이뤄지는 실험실이자 기억이 스며든 질문의 방’으로 명명하며, 하얀 벽의 갤러리가 아닌, 정서가 겹겹이 쌓인 장소에서 관람자가 보다 능동적인 감정의 경험자가 되기를 바란다. 낡은 문고리, 삐걱이는 문지방, 빛바랜 벽지의 결들이 작품과 교차하며 하나의 감정 풍경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관람자는 자기 내면의 파편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는 김휘의 대표작과 신작이 함께 소개된다. ‘무제’는 ‘우산 속에만 비가 내리는’ 장면을 통해 감정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무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감각임을 드러낸다. ‘꿈’은 상실과 그리움이 교차하며 스며드는 복합적 정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외에도 관람자의 정서적 반응에 따라 반응하는 설치작업, 영상, 텍스트, 사운드가 전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감정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다양한 감각의 지형에서 다시 쓰일 수 있는지를 탐색하게 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감정이라는 비언어적 대상을 다루는 다양한 협업이 주목된다. AI 기반 감정 분석을 연구하는 김수민 박사와의 협업은 감정이 기술 언어로도 분해되고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힙합 아티스트 TTOCHII와의 사운드 시각화 작업은 정서의 리듬을 청각과 시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풀어낸다. 디자이너 박현준은 영상의 형태로 감정의 흐름을 재구성했다. 각기 다른 방식의 번역을 통해 이 전시는 감정이라는 본질이 결코 단일 기호로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김휘는 “전시는 해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감정의 응집이나 종결을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람자가 전시 공간을 걸으며 각자의 감정 구조와 마주하고, 그 구조를 해석하는 일련의 행위 자체가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말해지지 않은 감정의 파편들이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그의 언급은, 이번 전시가 지향하는 예술의 위치와 윤리를 분명히 한다.

김휘 개인전 ‘DEAR!?’는 감정의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그것이 말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관람자는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의 구조 속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고 공간을 걷는다. 전시는 여전히 미완의 문장으로 열려 있으며, 그 문장의 다음 줄은 관람자의 응시와 감정으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