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곡가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작곡할 재능

이수홍 작곡가 승인 2018.12.15 16:51 | 최종 수정 2020.03.24 16:01 의견 0
Hippocrates

"선생님, 저에게 작곡할 수 있는 재능이 있나요?"

작곡을 배우기 위해 상담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의 첫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작곡이란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일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이러한 생각은 서유럽 낭만주의 시대의 천재음악가 개념과 유사하다. 즉, 천재 작곡가의 창작 원동력은 영감을 받는 것이며 이는 천부적으로 부여된 능력으로서 학습과 노력으로는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시대 천재 작곡가들은 위대한 정신을 지닌 문화적 영웅으로 숭상되거나 또는 우울한 사회 부적응자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작곡가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는 듯하다. 음악을 들으면서 깊이 감동하거나 그 음악을 매우 좋아하게 되면 작곡가는 보통 사람의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쉽게 이루는 천재일 것이라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듣기 때문이다.

작곡을 전공하려는 학생들도 이러한 음악천재 개념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기에 자신들의 능력의 한계를 미리 알고 싶어 하거나 때론 그 능력의 한계를 원망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질문이 그다지 의미 있거나 유용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 앞의 학생이 앞으로 천재작곡가의 재능을 보여줄지 여부를 내가 알 수는 없을 뿐 아니라 경험적으로 작곡에의 열정을 가지고 선생을 찾아온 학생들은 최소한 이 공부를 시작할 만한 정도의 재능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즉, ‘작곡하기 원한다면 천재가 아니어도 작곡할 수 있다’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그래서 일단 공부가 시작되고 나면 또 하나의 오해를 해결해야 한다.

“Art is long, life is short.” 흔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번역되는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예술철학자나 작가가 아닌 서양 의학의 창시자 히포크라테스다. 여기서 ‘Art’는 라틴어 ‘Ars’에서 기원했고 이 말은 다시 그리스어 ‘Techn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예술이 아니라 기법이나 전문 지식을 의미하며 히포크라테스의 맥락에서는 의술인 것이다. 그가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생은 짧은데 배우고 익힐 기술은 너무나 많다’이다. 비록 이것이 의술에 관한 말이라고 해도 이 말은 이 시대 작곡 지망생들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천재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작곡가가 대위법, 화성법과 같은 작곡의 기술들에 숙련될 때까지 오랜 시간 훈련받았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곡 지망생들은 대학 입학시험이라는 절대적인 목표를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또 그 밖의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기초적인 작곡 기술을 충분히 훈련받지 못하고 일단 작품을 써내야 하는 상황에 많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지 못한 채로 직업 작곡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계속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모든 예술창작의 과정에서 겪는 일반적인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체계적인 훈련의 부족에서 오는 부자유스러움 쪽에 가깝다. 따라서 위의 질문에 대한 이어지는 나의 대답은 ‘작곡 기법에 숙련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사용하라’이다. 그러한 노력은 충분한지 부족한지 확인 불가능한 천부적 재능의 양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더 나은 작곡가로서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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