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색깔을 버리지는 않더라도 좀 더 폭넓게 확대해서, 연주자들이 연주하고 싶은 곡이면서도 현대음악의 장점인 새로운 음색적 효과나 표현들이 잘 드러난 곡을 구현해 볼 시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작곡가 지성민
지난 12월 3일(금) 오후 7시 30분 수성아트피아에서는 <2021 KOREAN MODERN CLASSIC-2>가 개최되었다. 다채로운 현대음악들로 채워진 이번 연주의 포디움에는 작곡가 지성민의 대표적 작품인 바이올린 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이 연주되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작곡가 지성민의 두 협주곡을 한 시간에 걸쳐 연주하는 특별한 기획으로 이목을 끌었다.
작곡가 지성민은 유럽에서 가장 오랜 전통의 작곡상 중 하나인 오스트리아 그라츠市 음악상을 수상하고 영국의 BBC 라디오, 오스트리아의 국영 방송 ORF 라디오 등 유럽의 주요 매체에서 이미 여러 번 주목받았으며 그의 예술 활동은 오스트리아 최고 규모의 비공립 문화지원재단인 AVL 문화재단으로부터 후원받았다.
또한 그는 국내에서는 바이올린 협주곡 등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음악상인 일신 작곡상을 수상하였고 제네바 콩쿠르 2위 입상자인 피아니스트 이효주,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윤 등 국내외에서 기량을 인정받는 연주자들에 의해 여러 협주곡이 연주되고 있다.
이러한 작곡가 지성민은 이번 무대를 통해 무엇을 관객들에게 호소하고 싶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클래시안은 오늘 작곡가 지성민을 만나 그의 '삶'과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Q. 안녕하세요, 소개를 간단히 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안녕하세요. 작곡가 지성민입니다.
Q. 이번 연주회에서 선보이신 작품에 대한 설명 간략히 부탁드리겠습니다.
A. 감사하게도 작곡가로서 누리기 쉽지 않은 기회를 얻어 한 연주회에서 두 곡의 긴 협주곡이 연주되었습니다. 한 곡은 30분 길이의 피아노 협주곡 <to listen to dusty plasma(2019)>입니다. 특히 이 곡의 3악장은 국내외에서 여러 번 연주가 되었는데, 우크라이나의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이탈리아에서 출판되기도 하였습니다. 25분 길이의 바이올린 협주곡 <vv_vn___n_v n_v(2018)>은 최근 몇 년간의 제 작곡적 특징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대표곡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두 번째 연주였지만 2022년 1월에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에 의해 연주될 예정이기도 합니다.
Q. 작품들이 모두 현대적이며 새롭습니다. 어떻게 이번 작품들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A. 표현이 적합하진 않지만, 피아노 협주곡은 저의 다른 곡들에 비해 다소 옛 어법으로 쓰였습니다. 피아노가 가진 악기의 특성상 완전히 현대적인 주법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협주곡에서는 특히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와 더불어, 작곡할 당시의 여러 요인이 고려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제가 2010년부터 지속해서 사용한 작곡어법이 일정 단계에서 나름의 완성형을 보여주며 동시에 새로운 개념이 추가된 곡입니다. 이 곡에서부터 다시 다른 갈래로 나누어져서 그다음 곡들이 현재 작곡되고 있기도 합니다.
Q. 바이올린 협주곡의 경우 곡 제목이 특이합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A. 저는 제목에서 음악의 내용이나 의도를 설명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 음악은 음악 자체로 듣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크게 의미를 가지지 않거나, 곡의 외재적 요인과 간접적으로 연관된 정도의 선에서 제목을 결정합니다. 'vn' 이라는 것은 바이올린(violin)의 약어이기도 하고, 바이올린의 활이 움직임이 'up/down'으로 바뀐다는 것을 표현하는 기호와 비슷하게 생기기도 했습니다. 제 곡에서는 여러 개의 음이 슬러(slur)로 연결된 경우가 거의 없고, 대체로 한 음들이 독립적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up/down'의 움직임이 많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음악 자체보다는 곡에서의 물리적 움직임의 특성이 조금 영향을 준 제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혹시 이번 작업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A. 작곡가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매번 곡을 쓸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도, 단지 음악 문제뿐 아니라, 거대한 작업을 오랜 기간 쉬지 못하고 해나가야 하는 정신적, 체력적 문제들도 아주 크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렇게 길이도 길고, 편성도 크며 게다가 협주곡이라면 시작하기 전부터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Q. 작곡가님께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A. 저에게 있어서 예술은, 혹 일상적인 것이 재료나 아이디어의 시발점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질과 방법은 일상적이지 않고, 오히려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볼 수 없는·들을 수 없는 것을 경험하게 하며 볼 수 있게 하고,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가장 집약적이며, 정제된 수준의 사고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됩니다.
Q. 그렇다면 작곡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하셨던 고민과 해결 방법을 공유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지금까지 했던 고민의 종류와 양이 너무 많아 전체를 언급할 수는 없겠지만, 창작할 때도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작업 방식에 관한 시스템은 필요하다는 것이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 저도 아직 확실한 방법을 몰라서 매번 고민하고 개선해 나가는 중입니다. 아마 평생 해야 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Q. 작곡가님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니, 작곡가님께서는 어떠한 계기로 작곡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어린 시절에 여러 가지 악기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작곡은 특정 악기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를 아우를 수 있고, 특히 나 자신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작곡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작곡을 하다 보니 특히 더 많이 쓰게 되는 악기가 있고, 덜 쓰게 되는 악기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느낍니다.
Q. 현재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일들을 맡고 계시는가요?
A. 작곡가로서 활동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방향 중 하나입니다. 역시 작곡의 범주이지만, 즉흥 연주를 하는 것도 아주 좋아합니다. 유럽에서도 즉흥연주를 할 기회가 많았는데, 특히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했을 때, 청취자가 전화로 주제나 스타일을 신청하면 바로 즉흥으로 곡들을 만들었던 기억이 남습니다. 그리고 국제현대음악제인 <iN festival>과 현대음악 전문 앙상블인 'ensemble iiiiiiiii'의 예술감독도 맡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할 때 미숙한 실력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에도 흥미를 느껴서 개인전도 몇 번 열게 되었는데, 저의 음악미학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즐기기 때문에 앞으로 더 해 볼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Q. 요즘은 어떤 작품을 쓰시고 계시는가요?
A. 위촉받은 작품들을 우선으로 쓰고 있습니다. 바이올린과 앙상블을 위한 <concertino for violin and ensemble no.2>, 클라리넷 솔로곡, 첼로 솔로곡,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 첼로와 앙상블을 위한 <concertino for cello and ensemble no.1> 그리고 오는 4월의 링컨센터 연주와 더불어 1년간 뉴욕에서 녹음될 음반에 들어갈 피아노 솔로 곡들을 앞두고 있습니다.
Q. 작곡가님께서는 창작 욕구는 주로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시나요?
A. 특정한 상황에서 창작의 욕구가 일정하게 생기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창작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대표적인 예는 좋은 연주자의 연주를 보고 자극을 받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표현하고 싶은 미적 기준이나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구체화 되고, 업데이트될 때 가장 본질적으로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Q. 현재를 살아가는 작곡가는 '현대'의 음악을 하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현대성의 추구에 앞서 '음악'을 하려고 해야 할까요?
A. 당연히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누구도 정해줄 수 없으니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이고, 어떤 가치에 더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겠죠. 음악을 하지 않는 것도 가능합니다. 작곡하면 할수록 현대음악 안에서도 단순히 양분되지 않고 더 많은 갈래가 존재함을 느끼는데,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원하는 음악의 방향으로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잘 점검하는 것이겠죠.
Q. 작곡가님의 작업 과정이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많은 양의 작품을 작업하시는 거 같은데 혹시 슬럼프가 오면 어떻게 극복하시는지도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아직 많이 부족하여, 완전히 정형화된 형태를 보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베토벤 등 옛날 대가들의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작곡할 때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체력을 관리하는 것이 일단 가장 중요한 기본 작업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에 따라서 곡의 퀄리티나 양이 결정되고, 혹은 작곡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지조차도 결정 되는 것 같습니다. 나아가 작곡을 하고 싶은지조차도 결정되겠죠.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서울대학교 작곡과의 이강율 선생님께서 아마도 마지막 교내 워크숍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작곡가가 슬플 때 그 슬픔을 음악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말 슬프면 작곡이고 뭐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얼핏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어떤 경우에라도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전문가라면 작곡을 계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 해내는 것이 아니라, 작곡을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처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넘쳐 나와서 하는 작곡은 아마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요즘 더 많이 느낍니다. 작업 과정은 누구나 각자의 방법이 있는 것이겠지만, 인간이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고 그 부분의 한계와 문제점을 잘 극복해 내는 것이 작업 과정의 기본 혹은 핵심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작곡가로서 앞으로 어떤 작품을 음악으로 구현하고 싶으신가요. 또는 향후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A. 지금까지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정립하고 펼쳐내는 것에 더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것에 더하여, 연주자와 즐겁게 새로운 음악적 모험을 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해보고 싶습니다. 음악적 색깔을 버리지는 않더라도 좀 더 폭넓게 확대해서, 연주자들이 연주하고 싶은 곡이면서도 현대음악의 장점인 새로운 음색적 효과나 표현들이 잘 드러난 곡을 구현해 볼 시기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새로운 레퍼토리를 가지고 싶어 하는, 같이 재미있게 작업할 연주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한편 지휘자 진솔이 이끄는 대구국제방송교향악단의 이번 <2021 Korean Modern Classic-2> 공연의 연주 실황은 추후 유튜브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클래시안 이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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