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클래식 음악의 기틀을 다지고 대구시립교향악단(이하 대구시향) 창단을 이끈 초대 상임지휘자 故 이기홍(1926~2018) 선생의 타계 5주기를 맞아 대구시향은 '제501회 정기연주회'를 통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는 음악회를 개최한다.
오는 12월 15일(금) 오후 7시 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열리는 이날 공연의 레퍼토리는 59년 전, 대구시향의 시작을 알렸던 창립공연 연주곡이다. 새로운 상임지휘자 백진현과 대구시향은 그때 그 무대를 재연하며 대구시향이라는 이 ‘위대한 여정의 시작’을 관객과 함께 조명하고 초심을 다잡는 계기로 삼는다.
대구시향은 지난 1964년 11월 25일 발단식을 하고, 이기홍 지휘자의 지휘로 12월 17일~18일 양일간 대구방송국 공개홀(KG홀, 현. 대구콘서트하우스 자리)에서 창립공연을 했다. 당시에는 교향곡, 바리톤 독창, 피아노 협연, 오페라 서곡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으나, 이번 무대에서는 서곡, 협주곡, 교향곡으로 이어지도록 연주 순서만 일부 변경하였다.
먼저 글린카의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 중 서곡으로 문을 연다. “루슬란과 루드밀라”는 19세기 작곡된 5막 8장의 오페라로 푸시킨의 동명의 시를 바탕으로 했다. 세 명의 기사가 악당에게 납치된 루드밀라 공주를 구출하는 경쟁에 나서고, 시련과 모험 끝에 약혼자인 루슬란이 공주를 구한 후 그녀의 사랑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이날 연주되는 서곡은 ‘전속력으로 질주하듯이’라고 지시되어 있을 정도로 매우 빠른 속도로 경쾌하고 화려한 악상을 쉬지 않고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어서 바리톤 노운병(경북대 교수)이 현제명의 한국 가곡 “그 집 앞”과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더 이상 날지 못하리’를 부른다. 대구 출신 작곡가 현제명이 1933년 작곡한 “그 집 앞”은 이은상 작사로 단조로운 반주 위에 그리워하는 마음을 절제하듯 담담히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더 이상 날지 못하리’는 오페라의 1막 6장에서 ‘피가로’가 부르는 아리아이다. 바리톤의 중후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면서 해학적인 분위기를 잘 살린 곡으로, 여성 편력이 심한 시종 케루비노가 군대에 소집되어 여인들을 더 이상 유혹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약 올리는 장면에 등장한다.
이후 대본 줄거리 상 “피가로의 결혼” 3년 전 이야기에 해당하는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서곡을 들려준다. 로시니의 오케스트라 기법, 특히 크레셴도(점점 크게)의 묘미를 잘 살린 서곡은 발랄한 표정의 명곡으로 독립적으로 자주 연주된다.
전반부의 마지막은 김희조 편곡의 한국민요 모음곡을 오케스트라 연주로 감상한다. 김희조는 서양음악과 한국 전통 민속음악의 결합을 통해 민요의 대중화 및 현대화에 기여한 작곡가이다. ‘방아타령’, ‘베틀가’, ‘천안삼거리’를 연주하며, 59년 전 연주에 사용된 악보를 오랜만에 다시 펼친다. 귀에 익은 민요를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어보는 이색적인 무대가 될 예정이다.
휴식 후 후반부에는 피아니스트 이미연(영남대 교수)과 리스트 “헝가리 환상곡”을 연주한다. 이 곡은 리스트가 기존에 작곡한 ‘헝가리 랩소디 제14번’을 편곡한 것으로, 헝가리 민요에 의한 환상곡을 원곡으로 하기에 집시풍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또한 피아니스트의 화려한 기교를 확인할 수 있다.
끝으로 베토벤 “교향곡 제1번”이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 베토벤의 첫 번째 교향곡답게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작품에서 볼법한 고전적인 리듬의 흔적이 남아있다. 반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한 베토벤의 개성 있는 표현도 엿볼 수 있다. 그의 나이 30세 때 완성한 “교향곡 제1번”에는 베토벤의 특기라 할 수 있는 피아노 음악의 참신한 시도가 적극적으로 도입되어 있고, 대담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새로운 교향곡의 탄생을 알렸다.
1800년 4월 2일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열린 초연은 “대단한 예술, 새로운 작품, 아이디어의 충만함”이라는 극찬 속에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서는 “목관의 음향이 전체 오케스트라에 비해 과하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총 4악장 구성이며, 곡의 끝에서 사용될 법한 화음으로 독특하게 시작되는 1악장, 낭만적 주제가 아름다운 2악장, 미뉴에트라 불렀으나 자유분방하게 전개되어 스케르초 악장 시초가 된 3악장, 그리고 4악장은 느린 서주로 시작해 쾌활하고 활기차게 마친다.
대구시향 백진현 상임지휘자는 “이날 연주될 베토벤의 교향곡 제1번처럼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에게도 새로운 시도와 의욕이 충만한 ‘처음’이 있다. 이 시작은 훗날 불멸의 교향곡들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대구시향 역시 이기홍 초대 상임지휘자를 비롯한 선배 음악인들의 희생과 헌신의 토양 위에 뿌리를 내렸고, 관객들의 관심과 사랑을 양분 삼아 성장해 왔다. 대구시향이라는 이름으로 다 함께 첫발을 내디딘 그 날을 되돌아보며, 처음의 마음을 간직하되 새롭게 거듭나고 발전하는 대구시향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여정을 이어나가겠다.”라고 공연의 소감을 전했다.
한편, 故 이기홍 지휘자는 1950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1969년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원 지휘를 전공하였다. 1957년 바이올린 제자들을 중심으로 대구현악회을 창설하며 같은 해 대구교향악단 창단을 견인하였다. 이후 1958년 대구관현악단, 1963년 대구방송관현악단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창립공연을 하였다. 이런 노력 끝에 1964년 11월 대구시향을 창단, 초대 상임지휘자(1964. 11~1979. 5)로 15년간 이끌었다. 이후 부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2년간 활동하였으며, 부산 경성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1997년 퇴임 때까지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62년 경북문화상 수상, 1976년 10월 한국음악팬클럽 ‘이달의 음악가’로 선정된 바 있고, 1977년 싱가포르 국립교향악단, 1978년 타이완 국립교향악단 등을 객원 지휘하였다.
클래시안 이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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