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랩이 중대산업재해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한 산업 안전 전문서 임밸런스를 출간했다.

K-컬처, K-방산, K-푸드가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성과를 거두는 동안, 대한민국 산업 현장은 여전히 ‘안전지표 하위권’이라는 불편한 현실에 머물러 있다. 중대산업재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사고는 유사·반복·후회·망각의 고리를 끊지 못한 채 되풀이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003년 2701명에서 2023년 2016명으로 감소했지만, 20년이 지나도록 2000명대 아래로 내려오지 못했다. 근로자 수 증가를 반영한 만인율 역시 2003년 2.55에서 최근 10년간 1.0대에 정체돼 있다. 강력한 규제와 제도 개선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현장에서 체감할 만한 변화는 제한적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환경이 더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산업 현장의 고령화, 외국인 근로자 증가, 숙련 인력 감소가 동시에 진행되며 기존의 안전관리 방식은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임밸런스’는 35년간 산업 현장의 최전선에서 안전 업무를 수행해 온 김춘성 저자가 한국 산업 안전의 구조적 문제를 집요하게 추적·분석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중대산업재해가 줄지 않는 근본 원인을 정부·기관·기업·개인이라는 네 주체 간의 불균형, 즉 ‘임밸런스’에서 찾는다.

안전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영국의 만인율은 0.03, 일본은 0.17 수준이다. 이들 국가는 현재의 수치에 도달하기까지 5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은 OECD 가입 이후인 2000년을 출발점으로 본다면 아직 갈 길이 남아 있으며, 사고 발생 이후 대응하는 결과 중심 규제 방식만으로는 정부가 제시한 목표치 달성도 쉽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명확하다. 중대산업재해 예방은 처벌 중심 접근이 아니라 ‘과정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생산과 품질을 안전과 유기적으로 연계해 대책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보유한 자원과 역량을 활용해 각자의 강점에 맞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함께 제시된다.

아날로그·디지털 시대를 지나 AI 시대로 접어든 지금, 생산·품질·안전을 개별적으로 관리하던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다. 저자는 세 요소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전환과, 참여 주체 간 오픈 마인드가 불균형을 해소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임밸런스’는 산업 안전 전문가뿐 아니라 현장 관리자, 정책 담당자, 기업 경영자, 그리고 안전 문제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에게 “왜 우리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84가지 소주제를 통해, 한국 산업 안전이 나아가야 할 실질적인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는 분석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