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땅출판사가 시집 『나무 그늘에서』를 펴냈다. 저자 정현일 시인은 칠순을 넘긴 나이에 첫 시집을 묶으며 “세상에 남긴 것이 없다는 깨달음에서 글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오랜 세월 마음속에 간직해 온 기록들을 조용히 펼쳐 보이는 이번 시집은, 삶의 주변부에서 스쳐 지나간 풍경과 감정을 언어로 붙잡아낸 결과물이다.

『나무 그늘에서』는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시인의 정서를 이루는 뿌리에서 출발해 가난한 시대를 버텨 온 가족의 일상, 어린 시절의 기억, 그리고 시간 위에 켜켜이 쌓인 그리움으로 시선이 확장된다. 계절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마음을 비유하고, 바람과 비, 나뭇잎 같은 자연의 작은 움직임을 통해 삶의 진실을 포착하는 방식이 시집 전반을 관통한다.

서울의 거리와 지하철, 빗속의 풍경처럼 익숙한 일상 공간에서도 시인은 각기 다른 인간 군상을 관찰한다. 그 과정에서 소외와 위로, 고독과 연대가 담담한 문장으로 길어 올려진다. 나이 듦의 정서를 바라보는 태도 또한 차분하다. 몸과 마음의 변화, 지나온 시간에 대한 성찰, 그리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조용한 의지가 시 곳곳에서 드러난다.

정현일 시인의 언어에는 과장이나 장식이 없다. 대신 소박함이 주는 깊이와 오랜 시간 응축된 말의 울림이 자리한다. 오랫동안 품어온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쉼표가 되길 바라는 마음, 한 편 한 편이 천천히 머물며 읽히기를 바라는 태도가 시집 전반에 스며 있다.

『나무 그늘에서』는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시집이다. 누구나 마음 한편에 품고 있는 ‘그늘’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일상의 언어가 시인의 손끝에서 어떻게 다른 결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준다.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찾는 독자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나무 그늘에서』는 교보문고, 영풍문고,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도서11번가 등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