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의 진행과정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어떤 장르의 거시적 역사를 짚어가다 보면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그 장르의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유행하는 기법이 시대를 거침에 따라 복잡함과 단순함으로 그 지향을 달리해간다는 것이다. 화려하고 정교한 묘사가 중요했던 고대 그리스 - 로마 미술이 극도의 절제와 추상성을 특징으로 하는 중세 예술로 전화한 것이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으리라. 바로크 다성음악의 복잡성이 고전음악의 명료성으로 대체된 것도 이에 걸맞은 사례라 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80, 90년대를 전후로 하여 현대음악 진영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위 모던 미학에서 포스트 모던 미학으로 넘어가는 시대적 전환, 아방가르드의 쇠퇴, 현학적 음악에 대한 창작자들의 반발 등... 음향 주의와 조성적 회귀로 점철된 이 이후 시대의 이미지는 어쩌면 '전통적' 현대음악계의 시선에서는 대단히 논쟁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이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유럽 중심 현대 예술의 맥락 안에 있는 모든 음악가들에게 여전히 수없이 많은 내적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인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고 그 포스트 모더니즘의 흐름 안에서도 대중영합적 음악가냐 아니면 새로이 등장한 감각주의의 흐름을 도도하게 개척해나간 선구자이냐에 대해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 그는 바로 올해 73세를 맞는 미국의 작곡가 존 아담스다.
우선, 존 아담스는 현대 클래식 작곡가들 중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그러한 대중적 인지도의 영향으로 인해 그는 흔히 <프리지안 게이트>등의 작품을 만든 대중 지향적 미니멀리즘 작곡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후술 하겠지만 이는 그의 초기 스타일 작품이며 이후 그의 작품세계와 기법은 계속 변화해갔다.) 당대의 정치 현실을 풍자한 오페라 <닉슨 인 차이나>는 정치적 예술, 혹은 예술의 정치성이라는 테마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처음 공연되었을 때 이 작품은 평론가들로부터 저급하고 저질스러운 작품이라는 혹평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지금은 그 작품이 2년에 한 번씩은 꼭 공연되는 현대 오페라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그는 화제성과 대중적 찬사를 좇는 인기영합적 작곡가라는 의혹을 꼬리표처럼 달고 살아왔다. 뉴욕타임스는 심지어 그를 향해 "아담스 씨는 맥도널드가 햄버거를 위해 하는 일들을 아르페지오를 위해 한다."라고 말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그러나 아담스 자신은 자신의 창작 동기와 예술적 방향성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가 작업을 계속해나가는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다름 아닌 작품의 창조와 그것의 실현 과정이 자신에게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흥분" 그 자체다. 또한 그가 정치적 소재를 가지고 만드는 오페라 작품들은 모두 그 자신이 이해하는 현대 미국 사회의 집단의식을 예술적 방식으로 표현해 내는 작업으로서 선택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미지와는 달리 존 아담스는 앨범 수백만 장을 팔아 막대한 저작권료를 챙기는 밀리언 셀러 음악가도 아니다. 여기엔 클래식 음악계 자체가 가진 엘리트 오락적 성격이 큰 원인이 된다. 즉, 본질적으로 위험을 싫어하고 자신의 고유한 안락한 청취 영역을 지키기 좋아하는 클래식 청중 층의 특성상 한두 명의 스타 음악가에게 광적으로 몰려드는 일은 잘 생기지 않는다. 더구나 클래식 시장에서 베토벤이나 말러 등 고전 작곡가들의 작품들은 그 작품들의 역사성으로 인해 한층 더 고평가를 받는 측면이 있으므로 존 아담스와 같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가 시장 내에서 압도적인 입지를 차지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그가 음악가로서 자신의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은 자기 음악이 많이 팔려 나가서 저작권 수입이 많이 들어올 때가 아니라 "길거리나 슈퍼마켓에서 나를 알아보고 다가오거나 나의 음악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말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을 만날 때이다. 그는 이것을 자신이 "수백만 장의 앨범을 파는 음악가가 아니라는 현실에 대한 보상"으로 삼는다.
사실 그가 작품 창작에 있어서 가장 신경 쓰는 측면은 다름 아닌 예술가로서 성실한 작업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작업 리듬은 단순히 시간 차원뿐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측면을 모두 통할한다. 존 애덤스는 말한다. "내가 아는 모든 성공한 음악가들은 기본적으로 은행원처럼 일한다. 작곡은 무척이나 노동집약적인 직업이다." 이런 그의 말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정해진 분량만큼 글을 쓴다는 하루키의 유명한 작업 방식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 것은 예술가다운 삶이 아니지 않느냐는 말에 하루키는 이렇게 답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이야기의 광맥이 있다. 그것에서 이야기를 잘 뽑아내기 위해선 강건한 육체와 어느 정도까지 제도화된 의식이 필요하다." 아담스의 생각도 기본적으로 이와 같다. 작곡가의 삶이란 그저 "정원사"처럼 "멜로디, 화성 리듬"등이 알아서 잘 "자라"도록 놔두되 그저 "어떤 부분을 다듬어야 하는지", "어디에 그 나무들을 길러야 하는지", "무엇에 물을 주어야 하는지", "무엇을 뽑아내야 하는지" 그때그때 판단하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창작의 광맥, 그것은 자기 안에 원래 있다. 스티븐 킹은 그것이 "슈퍼모델의 육체"처럼 대부분 타고나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어쨌든 존 아담스의 말대로 창작자는 "훌륭한 운동선수의 자세"로 "몸매를 유지하고" 자신의 "시스템을 감시"하며 자신의 "에너지 수준에 민감"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잘 관리하고 나면 그 이후의 작업은 어느 정도 자신의 신체 그 자체에 운용을 맡긴다. "나는 내 직관적인 감각을 신뢰한다. 나는 의식과 무의식의 황혼이 맞닿은 영역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어떤 작품도 '대중성'등을 의도해선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저 그의 안에 자연스럽게 있을 뿐이다.
그 개인의 성향을 보아도 그는 특별히 대중 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수많은 상과 영예를 받고 난 후, 나는 다시 레고 블록을 가진 유치원생이 되어 앉아서 무언가를 조립한다." "나는 특별히 사교적이지 않다... 저녁 파티에 갈 때 내 아내는 내게 '당신은 항상 제일 먼저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작품을 계속해서 생산해 내는 데에 타인이라는 요소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말하길, "나는 내 음악을 통해 내가 세상과 소통한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들이 내가 쓴 것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때, 그것은 나로 하여금 내가 지구 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었다고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이지적 창작자인 동시에 지휘자이며 분명히 대중스타이기도 하다. "내 인생은 이상한 휘파람 같다. 나는 그런 작업을 하다가도 주기적으로 지휘자로 무대에 선다. 그리곤 갑자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음악가들과 백개의 오케스트라 앞에 서야 하는 매우 공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방식, 즉 연주를 통해 대중 앞에 서는 게 자신의 삶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즐겨 언급하는 것이 바로 어렸을 때 자신이 보게 되었던 듀크 앨링턴의 공연이다. 그는 그곳에서 듀크 앨링턴이 그의 밴드와 맺은 친밀한 관계, 나아가 관객들을 대하는 스스럼없는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모두 그의 예술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었다. 나는 결코 그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내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그에게 이런 활동은 결코 쉽지 않다. 실제로 그는 한 달 이상 집에 틀어박혀 곡을 쓰다가 곧 밖으로 나가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 대하고 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면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것은 곡의 악보를 잊어버리거나, 비행기가 갑작스레 추락하거나, 오케스트라 앞에 발가벗고 서거나 하는 등의 내용이다.
이 같은 어려움에도 그가 지휘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또 한 가지의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는 보완적(작곡에 대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근대 시대까지 작곡가가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악보였다." 그 말대로다. 악보라는 매체는 음고, 리듬, 대략적인 표현 등을 적어둘 수 있지만 실제 음악은 분명 그것을 넘어서는 영역에 존재하고 있다. 20세기 중엽 이후 대중음악, 재즈 등 새로이 발흥한 주류 음악계의 음악가들이 자신의 음악을 레코딩으로 남기는 데에는 열성적이었어도 악보로 만드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물론 엄격하게 들어맞는 합주가 필요한 기악음악, 특히 오케스트라 음악에서는 악보라는 매체가 여전히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작곡가 자신이 원하는 소리의 판타지가 악보에 다 담기는 것은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존 아담스는 말한다. "나는 거의 모든 내 작품들을 작곡가가 감독하는 음반으로 발매한 엄청난 자산을 가지고 있다." "이 녹음들은 악보에 대해 보완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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