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곡가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 모티브의 발전

이수홍 작곡가 승인 2019.04.05 11:53 | 최종 수정 2019.04.05 12:09 의견 0

일단 모티브가 결정되면 그다음 작곡가들이 직면하게 되는 과제는 그 모티브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관한 문제인데 이는 작곡 활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음악은 듣는 이의 의식적 집중을 해야 하는 연주용 음악이다. 배경음악이나 광고 음악과 같은 실용적 음악과 달리 연주용 음악은 유기적 통일성을 지니기 위해 반복적 요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친 반복은 지루함을 유발하여 청자의 집중력을 잃게 하고 반면에 과도한 변화를 추구하다 보면 맥락이 없는 음악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 음악 작품이 통일성 있는 구조물로서의 예술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흐름과 새로운 요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작곡가들은 모티브의 발전 방법들을 훈련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훈련 과정은 감각적인 활동이라기보다는 체계적인 사고의 과정이다. 그러나 많은 작곡지망생이 의식, 도는 무의식적으로 작곡이라는 행위를 매우 감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작곡의 필수적인 활동인 모티브의 발전 기법을 훈련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한계와 조건을 두고 작곡하기’는 작곡의 힘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며 보다 나은 작품을 작곡하는 지름길이다. 아래에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방법들을 소개하겠다.

위 악보는 하나의 모티브에 대한 다양한 화성적 발전 방법을 보여준다. 이는 선율의 화성화(harmonization)에 관한 학습을 위한 것이 아니고 화성화 그 자체가 효과적인 동기의 발전 방법이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제시하였다.

1번에서는 모든 음들이 협화이며, 2번에서는 I도 화음이 펼쳐진 사운데 전타음 사용, 3번에서는 I도 화음 위에서 변이음 사용, 4번에서는 V2-I6 진행에서 전타음 사용, 5번에서는 V7/V-V-V7/VI-VI, 6번에서는 VI-V6-I 진행에서 선행음 사용, 7번에서는 iv6-vii2-V-I, 8번은 bVII9-V/VI-VI 진행 위에서 전타음이 사용되었다.

처음 제시된 모티브의 화성을 고려해서 그다음 단계의 화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첫 모티브가 구성음의 전타음화가 이루어진 4번 모티브라면 바로 다음 발전 단계에서도 같은 방식의 화성화가 적절할 것이다. 2번 모티브에서는 으뜸화음의 연장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곡의 첫 단계에서 종종 등장한다. 화성의 기능적 진행을 서두르지 않고 으뜸화음을 지속하면서 확고한 주제의 제시, 또는 이야기의 급속한 진전을 절제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마치 앞으로 전개될 내용이 많으니 기대하라는 듯하다. 즉, 어떤 발전 방법(여기서는 화성의 구사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는 내가 작품의 어느 단계에서 작곡하고 있는가에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모티브의 첫 제시와 가까울수록 또는 모티브를 강하게 상기시킬 필요가 있는 부분에서는 모티브와의 유사성이 많은 발전 방법이 사용되어야 한다. 새로운 방향으로 듣는 이의 관심을 돌리고자 하거나 모티브와 대조적인 모습이 필요할 때에는 그 변화의 정도가 커진다. 그러나 곡의 길이와 구성 및 작곡 단계를 고려하지 않고 체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새로운 요소들을 도입하면 듣는 이들은 그 흐름을 따라가다가 피로해진 나머지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아래의 악보들은 모티브와의 유사성에 있어서 여러 단계의 발전 방법들을 보여준다.

위의 악보에서 1번은 모티브이고, 2번은 모티브의 단순한 2도 하행(transposition)으로 모티브와 매우 비슷하다. 3번은 모티브의 전위(inversion)인데 리듬적 특징이 유지되어 모티브와의 관련성이 높다. 4번은 모티브의 순차 진행을 도약 진행으로 바꾼 것으로서 모티브와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린다. 5번은 모티브의 역행(retrograde)으로서 리듬의 완전한 변화로 인해 모티브와 상당히 다르게 들린다. 6번은 강박의 위치를 변화시킴으로써 모티브와 큰 차이를 보인다. 7번은 음가가 2배로 확대되었으며 모티브와의 유사성은 많지 않다. 8번은 음의 생략과 반복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모티브의 특징이 조금 연상되는 정도이다. 9번은 모티브의 동형진행이며 그 연관성이 매우 분명하다. 10번은 리듬적 특징은 유지되고 있지만 선율의 윤곽이 완전히 달라져서 모티브와 상당히 다르게 들린다. 

물론 하나의 음악 작품의 모든 부분에 다 모티브가 활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작품은 너무 어려워서 듣는 이들을 숨 막히게 할 것이다. 중요한 모티브들의 연결구 또는 종지 부분에서는 관용적인 소재들을 사용함으로써(모차르트의 경우 피아노 협주곡에서 중요한 악구들의 종지에서 Alberti bass 위의 긴 트릴을 사용하였다) 곡의 집중도를 조금 떨어뜨리고 듣는 이들도 그 친근함으로 인해 지금까지 계속된 긴장의 완화를 느끼게 된다.

 

작곡가 이수홍
작곡가 이수홍

작곡가 이수홍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이론과를 수석 입학 및 졸업하였으며, 음악저널콩쿠르 대상, 전국환경음악콩쿠르 금상, 서울창작음악제 등 여러 콩쿠르 및 음악제에서 입상하였다. 또한 한국작곡가회 이사, 남태평양 피지 'SUVA YOUTH CHOIR' 음악감독, 앙상블 ‘엘’ 작곡가, 음악선교단체 ‘깊음’, ‘올 댓 첼로’ 작곡가를 역임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국내외 다양한 연주회에서 연주되고 있으며 단편영화 ‘피아노 치는 남자’, 장편영화 ‘트릭’, 뮤지컬 ‘가족의 정석’에서 작곡으로 참여하였다. 현재는 백석대학원 작곡과 석사과정을 끝내고 음악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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