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의 작품 경향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이를 위해 그의 창작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곡가 죄르지 쿠르탁을 잠시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는 15살이 되기 전까진 이른바 현대 클래식 혹은 현대음악이라고 불리는 장르에 큰 관심이 있지 않았다고 한다. 음악, 그리고 작곡에 대한 애정은 매우 이른 나이부터 키워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던 그가 현대음악에 대한 강력한 내적 끌림을 느끼게 된 것이 바로 그가 15세 때, 그 자신이 다니던 길드홀 음악학교에서 작곡가 조지 쿠르탁의 음악을 듣게 되면서부터 였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음악이 정확히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음악을 듣자마자 내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소리의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린 것이다.”
이후 그는 쿠르탁을 연구하고, 18세 때 이후론 쿠르탁에게 직접 사사를 받기도 하면서 그에게 강한 예술적 영향을 받는다. 그 예술적 영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쩌면 음악 작품 자체에 대한 열렬한 애정, 작품이 작품 외부의 이데올로기를 따라가선 안된다는 강력한 의지 일지 모르겠다. 아데스 자신이 생각하기에 “끔찍한 이데올로기 시대에서 살아남은 음악들을 보면 결국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에 성공한 음악들”이고 이를 보면 “그 어떤 의제도 작품 자체가 필요로 하는 요소들보다 강력한 의제일 수 없”으며 따라서 “예술에서 어떠한 종류의 의제가 만들어지면 그 의제는 반드시 그 의제 자체에 반하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는 이 끔찍한 이데올로기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빛나는 모범으로 쿠르탁을 제시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이 같은 작품의 음악적 구성 자체에 대한 종교적 열의와 믿음, 이것이 그의 작품을 기성 교향악단들의 정기적 레퍼토리로 자리 잡게 만든 힘일지 모르겠다. 실제 그는 대부분의 현대음악 작품들이 세계 초연후 완전히 잊혀버리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도 베를린 필하모닉 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작품이 연주되는 몇 안 되는 현대음악 작곡가중 하나다. 이러한 측면에 더해 그 자신이 성공적인 연주자이자 지휘자, 즉 퍼포머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최근 그의 주된 예술적 관심사가 자기 작품의 실제 현장 연주 ‘행위’ 그 자체로 옮겨가도록 하는데에 주된 이유가 되었으리라. 여기서의 행위란 당연히 리허설 연주 지휘 등을 포괄하는 현장에서의 ‘음악 만들기’ 과정 전체를 말한다. 다시 말해 수없이 긴 작곡기간에 비해 현장 연주 무대에서의 수명은 지극히 짧은, 연주하는 것보다 곡 쓰는 행위 자체가 더 중요한 작품이 아니라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등 기성 레퍼토리들과 경쟁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갖춘 작품을 만들어 그것이 ‘더 잘’ 연주되도록 하고 오케스트라 등 기성 연주가 필드에서 ‘더 잘’ 이해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아데스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아데스는 베를린 필에 의해 연주되어 자신의 성공가도를 열어준 작품 Asyla의 경우 2002년 초연보다 최근의 연주가 훨씬 성공적이었다고 말한다. 이는 오페라 The Tempest 등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그가 이데올로기를 배제하고 작품 자체의 내재적 수준에 집중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나이가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토마스 아데스는 71년생으로 현대음악계에서 그와 같은 명성과 영향력을 누리고 있는 작곡가들 중에서는 무척 젊은 편에 속한다. 그가 멘체스터의 Halle Orchestra에서 작품으로 발표함으로써 프로 현대음악 작곡계에 데뷔한 93년은 이미 50년대 혹은 그 이전에 시작된 음악계의 이데올로기 전쟁이 끝나고 다름슈타트를 위시한 중심지들의 영향력도 쇠락해갈 즈음이었다. 그에게 있어 작품 창작에서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이란 단지 희미하게 지각될 뿐 그 자신을 내적으로 심대히 압박해오는 요소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니멀리즘 계열의 작품들이 여전히 다른 종류의 현대음악에 대한 일종의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분열과 분노는 어쨌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지난 시대의 것이다. 굳이 어떤 표준을 바탕으로 논쟁하지 않아도 우리가 쉬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다.”
여기까지 보면 그가 마치 순수음악 주의자, 즉 이른바 표제적, 묘사적 음악을 반대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의 말 대로 “지루한 태도는 양 측면(순수주의, 표제 주의) 모두에서 발견될 수 있다. 훌륭한 표제음악은 수많은 음악적 내용과 예술적 진실을 가질 수 있다. 멘델스존의 헤브리디스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실로 놀라운 작품이다. 그것은 분명 표제적이지만 추상적인 차원에서도 동시에 훌륭한 작품이다. 둘 다 가질 수 있으며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니다.” 또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베토벤 9번 교향곡의 피날레 중간 부분에서 우리는 빛나는 순간들을 본다. 곡이 갑자기 오페라로 바뀌는 순간들 말이다. 한번 영웅 교향곡에 노래를 삽입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것 또한 왜 안 되겠는가?”
그를 들여다보는 데 있어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그의 영화음악 작업이다. 바로 2018년 작품 <콜레트>(워시 웨스트모어랜드)다. 벨 에포크 시대의 여성 작가 콜레트를 다룬 이 전기영화에서 감독 워시 웨스트모어랜드는 시대적 감각에 대한 예민한 포착과 예술적 수준이 담보된 음악을 목표로 토마스 아데스에게 영화음악을 의뢰한다. “나에게 가장 큰 도전은 이 작업이 콜레트와 그녀의 세계에 관한 것이지 나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 내 작품들은 주로 화성의 세부사항에 대한 강렬하고 강박적인 초점들을 다룬다. 영화음악 작업은 마치 현미경을 통해 한가닥 혹은 두 가닥 사이의 초점을 맞추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것을 통해 순간의 정서적 진실을 최대한 많이 드러내는 것이 이 작업의 핵심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그는 영화를 바탕으로 한 곡을 쓴 적도 있다. 그것은 바로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를 바탕으로 쓴 The Exterminating Angel이다. 이 작업의 흥미로운 점은 부뉴엘의 영화가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가능한 예술적 선택의 양 극단이다. 음악이나 음악의 부족이 영화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
그의 이러한 다양한 정체성은 틀림없이 그 자신에게 얼마간의 정신적 긴장을 가져다줄 것이다. 공연에서 요구되는 덕목, 작곡에서 요구되는 덕목, 공동 작업에서 요구되는 덕목들은 모두 약간씩 상이할 것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 또한 음악 작업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것들이 균형을 잃는 순간 음악 자체의 생명력도 얼마간 균형을 잃을지 모른다. 작업의 균형을 통한 음악의 생명력 만들기. 그리고 이 것을 꾸준히 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작곡가의 내면에 음악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창작 정신의 생명력이 살아 있어야만 할 것이다. “항상 내 머릿속에 음악이 지나가고 있다.” 아데스의 말이다. 그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어쨌든 나는 계속 쓸 것이다.”
작곡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떤 창조적 생명력. 작가 스티븐 킹은 자신이 글을 쓰는 과정을 화석을 캐는 것에 비유한 적이 있다. 자신은 마치 소설의 전체적인 상이라는 것이 자기 내면의 어딘가에 묻혀있고, 자신은 최대한 그 전체 형상이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그것을 캐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아데스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안갯속에서 모양을 만드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처음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형상은 “큰 점토 덩어리”같으며 그것을 조금씩 깎아가며 “그 아래에 있는 분명한 것”을 드러내 나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작업은 계속해서 최초의 덩어리를 “줄이고 줄이고 줄이는” 과정이다. 물론 다른 방식의 창작법도 무수히 있겠지만 그 자긴은 “명확한 재료들을 가지고 복잡하게 짜 나가는 방식보단 그것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내면의 상을 꾸준히 일정량 파내려 가는 작업방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래 지속되는 강한 힘과 성실함 일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되도록 아침에 작업을 한다. 물론 그 역시 어렸을 때에는 남들처럼 “아무 때 아무 시간”이나 골라서 벽에 다트를 던지듯 작업했지만 인생의 어느 시기에 아침에 반드시 작업을 하기로 자신의 작업 리듬을 정했다.
그러나 그가 반드시 자기 내면을 파내려 가고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업 방식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라디오 수신을 시도하는 것과 같다. … 어렸을 때 나는 라디오 수신기의 다이얼을 조작하며 노는 취미가 있었다. 일종의 전송을 왜곡하는 놀이었다. 나는 이러한 왜곡이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될게 뭐가 있는가?”
사실, 이러한 모든 방법론들 조차 그 자신이 자신의 일에 대해 가진 열정의 부산물일 것이다.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다는 절실한 마음, 그것을 위해 그에 필요한 각각의 과정을 성실하게 제대로 밟아나가는 것. 그게 사실 핵심 일터다. 그는 말한다. “곡을 제대로 썼을 때 훌륭한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한 시간 동안의 연습으로 뽑아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보면 놀랄 것이다.” 방법, 절차, 이론, 이런 것들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 역시 최종적으로 훌륭한 예술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에 이용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는 외려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만일 실용적인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 결과로 무언가를 얻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다.” “모든 일이란 너무 완벽하면 지루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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