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토전생[穢土?生] 2-4 : 벤트 소렌센(Bent Sorensen)

노승주 기자 승인 2020.01.07 12:30 | 최종 수정 2020.01.07 12:37 의견 0

현재의 음악은 언제나 과거의 음악을 반영한다. 이는 개인적 측면에서도, 사회적 측면에서도 참이다. 한 작곡가의 삶을 생각해보자. 모든 예술이 다 그렇겠지만 음악은 특히나 개인의 숙달된 기술과 공동체의 축적된 문화적 자원을 토대로 하는 예술이기에 어떤 한 사람이 뛰어난 작곡가가 되기 위해선 어려서부터 악기의 연주법을 훈련하고 각종 레퍼토리를 지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습득된 과거의 레퍼토리들은 파편화되어 그 작곡가의 내면에 언제든 그 조각을 꺼내어 쓸 수 있는 가능성의 창고, 혹은 가능성의 세계를 이룬다. 모든 작품은 바로 이 가능성의 세계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제 아무리 혁신적 이어 보이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어느 지점에 선가는 과거에 대한 인용일 수밖에 없다. 

▲작곡가 벤트 소렌센(Bent Sorensen)

의식적으로, 혹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불현듯 발생하는 과거에 대한 인용. 이 테마를 깊이 파고드는 작곡가가 한 명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할 덴마크 작곡가 벤트 소렌센(Bent Sorensen)이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트롬본 협주곡인 ‘Birds and Bells’나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위한 작품 ‘Echoing Garden’ 혹은 바이올린 협주곡 “Sterbende Garten”을 들어보자. 그의 작품 세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모호한 색채감, 마치 포토샵으로 블러 처리를 한 듯한 음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음악의 이러한 특징들은 자연 장, 단조의 음계에 미분음을 통한 변화를 주어 얻어낸 것이다. 그는 이 미분음의 미세한 조정이라는 전략을 통해 자칫 원색적으로 들릴 수 있는 장조와 단조의 색채감을 무마한다. 이것은 마치 외부에서 틈입해 들어온 이물질에 대항하는 백혈구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모호하게 흐르는 음악적 골격 안에 불쑥불쑥 틈입해 들어오는 원색적 색채의 요소들을 점차 수습해가는 과정이 그 음악의 전개법적 특징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불쑥불쑥 틈입해 들어오는 그 원색적 요소들이란 바로 그가 가진 가능성의 세계의 저변에 깊숙이 파묻혀있는 옛 음악에 대한 기억들이다.

이 음악적 기억들, 음악적 파편들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것들의 연원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아마 벤트 소렌센 자신만이 알고 있거나 혹은 자신조차 모를 것이다. 그러나 공개된 그의 인터뷰들을 토대로 몇몇 굵직굵직한 선들을 추적해볼 수는 있으리라. 우선은 현악기다. 그는 물론 다양한 악기를 활용해 작곡하는 작곡가이지만 그의 작품들을 보면 현악기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다른 작곡가의 경우라면 아마 그가 현악기를 연주할 줄 알던가 해서 현악기 이디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것이리라고 쉬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벤트 소렌센의 경우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데에 필요한 충분한 인내심을 갖지 못했던 탓으로 지금까지 그 어떤 악기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작곡을 할 때에 결코 악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철저히 자신의 머릿속 소리에만 의존한다. 자기 손의 테크닉적인 불완전성에 제약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작업방식 때문에 그의 내면 깊숙이 파묻혀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에 녹아들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가 현악기 연주자가 아니라면 그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현악기에 집착할까? 그것은 아마 그의 아버지의 영향일 것이다. 클래식 마니아였던 소렌센의 아버지는 그 자신이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소렌센에게도 바이올린을 가르치려고 했었다. 비록 상술한 바와 같은 이유로 그가 바이올린을 계속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이 사실들과 이 일들은 어린 시절의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성인이 된 이후, 어느 날은 그의 부모님이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집으로 다시 이사를 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의 다락방에서 그는 자신이 5살 때 썼던 첫 작품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고 한다. 이 기억에 대해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그 안에 잊힌 걸작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잘못된 조성으로 작곡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이후 내가 다른 악기들도 조금씩 다룰 줄 알게 되면서 내 창작의 영역은 점차 넓어져갔다. 그러나 나의 시작점은 분명히 거기였다.”

또 다른 해석의 단초는 그가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방식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었다. “내가 음악을 만들 때, 나는 세계 전체가 나에게 내가 만드는 음악에 필요한 재료를 ‘말해주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새가 나의 곡을 노래하고 자동차가 나의 곡을 연주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모든 대화의 소리도 내 음악과 관련된 어떤 소리로 변형되어 들린다. 그 대화가 실상은 음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어쨌든 상관없는 것이다. 그것이 내 머리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 말이다.” 이처럼 그는 음률이 고정되어있고 리듬이 고정되어있는 실제적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실존하는 모든 이미지, 분위기 등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이것이 바로 그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그 파편화된 기억들의 실체다. 즉 그것은 실제 소렌센 자신이 과거에 들었던 음악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어떤 음악적 뉘앙스를 가진 기억들의 파편인 것이다. 

이와 같은 ‘음악적 뉘앙스를 가진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작곡'방식이 잘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가 그의 대표작인 ‘Eveningland’다. 그는 이 작품의 탄생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나는 내 머릿속에 두 가지 영상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인데, 그 기억 속 나는 내 부모님 집의 어딘가에 앉아 신비한 빛을 지닌 늦여름 저녁의 풍경을 보고 있다. 그때 나는 아마 6살 혹은 7살이었을 텐데, 왜 내가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또 하나의 영상은 뉴욕에 관한 것이다. 한 명의 성인으로서, 바다를 이룬 도시의 빛을 구석구석 누볐던 나의 기억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방식이 약간은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할 것이다. 후술 하겠지만 그는 개인적 측면에서도 대단한 몽상가다. 그리고 그 자신이 말했듯 “거의 꿈을 꾸는 상태에서" 음악을 만든다. 그에게 있어 음이란 그 꿈의 세계에 물질성을 부여하는 방법인 동시에 그 꿈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주요한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말했다. “나에게 음표는 내 머릿속에서 폭발하여 내가 꿈을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수류탄과 같다.”

이러한 종류의 창작 철학은 단지 그에 대한 정밀한 묘사만이 가능할 뿐 그것의 본질과 핵심을 논리적으로 설파하는 것은 어렵다. 어쩌면 단지 어렵기만 한 게 아니라 그러한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벤트 소렌센이라는 한 작곡가의 내면에 어떤 불가해한 원인이 쌓이고 쌓여 형성된 가능성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에서 작품을 길어 올리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과정. 이것이 바로 그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나, 동시에 이것은 인생 그 자체가 그렇듯이 그가 끝끝내 온전히 해명해내지 못한 어떤 신비로운 것이기도 하다. 사실 예술 자체가 원래 그런 성격을 가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명의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열망을 왜 갖게 되는지, 작품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 작품이 어떻게 감상자의 마음에 감동을 불러일으키는지 등 각각에 대해 우리가 언어로 무언가 말을 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말들이 하나의 예술작품, 혹은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이 사회에서 작동하는 그 모습을 얼마나 제대로 포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어쩌면 벤트 소렌센이 자신의 작품 창작 과정에 대해 그저 더듬어가는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명제 앞에서는 그저 더듬어 가는 표현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한다. 이 말들은 틀림없이 어떤 숭배의 태도에서 나온 것이리라. 즉 영원히 내가 숭앙하는 그것의 본질에 가닿지 못함을 알면서도 그 작은 파편이나마 얻고자 계속해서 더듬거리는 몸짓이다. 

흥미롭게도 벤트 소렌센이 가진 일견 신비주의적인 예술철학은 그 자신의 종교적 믿음과 깊은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어떻게 신을 믿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에 대해 나는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삶의 수많은 다른 멋진 것들에 대해서 역시 우리는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지 않은가…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사랑과 예술과 음악이라는 테마들은 그 자체로 대단히 종교적인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사랑과 예술과 음악과 종교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다.”

대답할 수 없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이러한 것들에 형상을 부여하는 게 바로 그의 음악적 재능 일지 모르겠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그 말할 수 없는 것들이 개개인의 내면에 불러일으키는 감상적 인상까지 그대로 재현해 낸다. 가령 ‘Hall of Mirrors’ 같은 곡을 살펴보자. 어떤 분명한 음악적 영상이 존재하나 그것은 잔향 속에 파묻혀있다. 그 잔향들 가운데에서 우리는 그 원래의 형상을 아주 희미하게만 감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 하나는 확실하다. 이것은 틀림없이 그가 가진 종교적 믿음의 이미지이기도 할 것이며 그가 살아가는 삶의 이미지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이와 같은 신비주의적 사상, 종교적 믿음, 말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예술에 대한 인지 등은 원래부터 모든 인간이 다 공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지킬 수 있느냐, 즉 그러한 모호함으로 구성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무너뜨리지 않고 단단하게 세울 수 있느냐 이다. 벤트 소렌센은 말한다. “사람들은 ‘나는 그 무엇도 믿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나는 그런 말들의 기저에 믿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불안하다. 그렇기에 삶의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여나가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예술에서도 우리는 그런 불확실한 것들을 단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추방하고 자꾸만 확실한 것을 추구하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바흐와 미켈란젤로를 만들어낸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는 키에르게고르가 자주 걸었던 거리에서 거주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앉아서 수난곡이나 레퀴엠을 쓰려고 한다면, 당신의 안에 어떤 영적인 정신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종교적인 마음이 전혀 깃들어있지 않은 레퀴엠, 과연 누가 그것을 듣겠는가?” 이것은 비단 종교에만 국한해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작품의 창작이라는 영역에 있어서 말해지지 않는 정신성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예술계에서 갑론을박이 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마음이 전혀 깃들어있지 않은" 작품, “과연 누가 그것을 듣겠는가?”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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