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가 불편했던 이유, 그리고 단 하나의 예외
이준호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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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1 15:48 | 최종 수정 2019.01.2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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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동요가 싫었다. 유치원에서 시키는 수많은 율동도 너무 싫었다. 명절 같은 때 어른들이 나더러 유치원에서 배운 율동과 노래를 해보라고 할 때, 난 매번 지구가 곧 멸망할 듯 울면서 뒤로 숨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이유도 모르고, 그냥 그게 싫었다. 나중에 성인이 된 뒤 문득 다시 생각을 해봐도, 동요는 싫었다. 그리고 이유도 명확히 찾았다. 웬만한 동요들이 담고 있는 정서는, 알고 보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투영하고 싶은 정말 딱 고정된 이미지일 뿐이었다. 그저 애교나 부리길 원하는, 어른들에게 활짝 웃어주기만을 원하는 어떤 것들 말이다. 이렇다 보니 수많은 동요들의 가사와 음률은 되레 아이들을 어떤 도그마에 가둬버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동요들 중 딱 한 곡은 달랐다. “어른들은 몰라요”다. 어릴 적 이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 난 영문도 모르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직관적으로 가슴을 자극한 것이다. 역시 성인이 되어 이 노래의 가사를 찬찬히 뜯어보았을 때, 이 노래야말로 진정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쓰여진 가사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그저 생글생글 웃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찍어 누른다고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기계처럼 움직여주는 하등생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렬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어린이의 정경”이 주는 복잡한 감정들
한편, 슈만 “어린이의 정경”을 또다시 음미해 본다. 내겐 이 곡만큼 깨알같은 사연이 많은 곡도 없다. 짧은 소품 열세 곡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매우 다채로워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머릿속에서 집 몇 채는 지었다 부쉈다 할 수 있는데, 이 곡을 타고 이루어지지 못한 슬픈 사랑도 찾아왔고 그러한 이유로 내 눈물샘이 고장난 수도꼭지가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런 사연들을 제쳐놓더라도, 어린이란 단어가 주는 통상적인 그저 밝기만 한 이미지로 정리하기에는 뇌와 가슴에 여전히 부하가 걸린다. 언뜻언뜻 내비치는 형언못할 애잔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씩 직접 연주해 보면 그 애수는 더욱 짙게 내 가슴을 파고 들어온다. 이 곡을 큰 틀에서 보면 분명 대곡이다. 그러나 쓰이는 기교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성인들의 전유물인 차력쇼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기교가 거의 없고 간결한 필치로 순수함의 극치를 담은 정서만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것이 파고 들어갈수록 단순하지만은 않은 감정을 에코처럼 남겨두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머리가 아닌 가슴 속에서 복잡하게 얽힌다. 단순명료하게 정의할 수가 없다. 그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로 반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하루는 친한 지인 A가 같이 여행을 하던 중 이 곡이 차에서 나오자, “이 팍팍한 세상 속에서 자라야 할 아이들을 보고 느끼는 어떤 측은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느껴진다”면서 입을 열었다. 속이 시원했다. 개인적으로 이 곡에 얽힌 깨알같은 사연들도 있는 데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북받치는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가슴을 자극하는 바람에 한동안은 듣거나 연주하기가 겁나는 곡이기도 했는데, 지인 A가 내가 느끼는 그 감정들을 일타쌍피로 정리해 이야기한 셈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앓던 이가 뽑힌 것처럼 시원했다. 최근 내게는 분명 지인 A가 말했던 그 감정이 지배하는 상황이 있었기에 더 큰 위로가 됐다. 대여섯 살 아이들에게 태극기집회에서나 통하는 증오에 가득찬 해묵은 색깔론을 주입하는 모습을 보고도 제지시키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지켜만 봐야 했던 나의 심적 갈등을, 이 아름다운 곡들은 그대로 다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 잃은 것만으로도 이미 큰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무슨 죄로 말도 안되는 색깔론에 세뇌당해야 하는가 싶었다. 이 복잡다단한 감정을 공감해주는 곡이 바로 “어린이의 정경”이었던 것이다.
다시 동요 “어른들은 몰라요”를 가사를 음미하면서 읽어 보자.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가요
예쁜 옷만 입혀주면 그만인가요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건데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알약이랑 물약이 소용 있나요
언제나 혼자이고 외로운 우리들을
따뜻하게 감싸 주세요 사랑해주세요
놀랍다. 말도 안되는 색깔론에 세뇌되고 있는 그 아이들의 마음이 저렇지 않을까? 모르긴 몰라도, 작곡자는 슈만 “어린이의 정경”에 큰 영감을 받고 이 노래를 써냈으리라 유추해 본다.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강력한 연결고리가 있다! 슈만과 이 노래의 작곡자는 아이들을 그저 어른들의 기쁨조 따위로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말이다. 시공을 초월한 이 두 명의 작곡가와 두 곡은 우리에게 외면할 수 없는 훈시를 던져 주는 듯하다.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그 감정에 우리는 얼마나 책임질 수 있는가? 우리가 느끼는 그 이상의 감정들을 아이들은 이미 느끼고 있다. 어른들의 기쁨조이거나 피교육자가 아닌, 그들도 어른들과 동일한 독립된 인격체라는 걸 인정함이 마땅하다는 것을,이 아름다운 음악들은 분명히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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