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유감(1) -?늦는 관객

홍준철 지휘자 승인 2019.04.16 12:28 | 최종 수정 2019.04.17 06:05 의견 0

한국의 연주회는 관객들이 늦게 연주장에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음악회를 일찍 시작해도 그렇고 늦게 시작해도 똑같다. 대부분의 공연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오죽하면 공연 전에 무대감독 및 스텝과의 미팅에서 몇 곡을 연주하고 늦은 관객을 입장 시킬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 주요한 협의사항이 되어 버릴 정도이다.

관객이 늦으면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한다. 우선 제시간에 공연을 시작하기 못한다. 무대 감독실에는 모니터를 통해서 로비의 곳곳과 객석을 볼 수 있는 화면이 있다. 공연 시작 전에 이를 면밀히 체크하는바 아직 입장이 덜되면 연주시간은 늦어지기 마련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첫 번부터 해설을 하거나 인사말을 넣기도 하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음악회를 위해 시간을 잘 지켜온 관객들의 준비된 감상흐름을 흔들리게 한다.

늦은 관객은 어둠에서 움직이니 다른 사람이 자신을 잘 못 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착각하지 마시라. 객석에서든, 무대에서든 정확하게 다 보인다.

음악회 프로그램에 대하여 고민을 해본 연주자의 입장에서 보면 음악회 전체를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로 만들고 유기적으로 연결해 놓는데 늦게 온 관객들 때문에 그만 초반에 생채기가 나버린다. 마라토너를 뛰다가 멈추게 만들고 다시 뛰게 한다면 그는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음악도 같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 마련이다.

어느 큰 공연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짐작컨대 단체로 어르신들을 초대하여 1층 가장자리 양쪽에 좌석을 배정을 한 모양인데 그만 버스가 늦었는지 음악이 무르익은 두 곡이 끝나고서야 입장하면서 사단이 난 것이다. 인원도 많았고 앞자리였고 조명은 무대도 낮추었기 때문에 어두운 극장 안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인도자 되는 사람이 이리가라 저리가라, 안 보인다, 불을 켜라, 조용해라,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가로 질러 갔다가, 다시 되돌아가고, 빈 좌석에 앉아라, 내 자리다, ......, 한참의 소동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는데 이러는 동안 동강난 감상의 흐름은 차치하고라도 무대 위에서 협연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솔리스트와 지휘자의 표정이 아주 난감함으로 일그러져 다음 연주가 불안 할 정도였다. 관객입장인 나에게는 한숨이 푹푹 나오는 장면들이었다. ‘ 왜 이렇게 되어야 하지?. 우리에게 문화선진국은 멀기만 한 것일까? 좀 일찍 모셔서 입장하게 하였거나 늦었다면 휴식 이후에 입장하면 어디가 덧나나?’

연주장에 늦는 관객들은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종의 미필적 고의의 폭력을 행사하는 결과를 낳는다. 연주자에게는 무거운 불안감을, 일찍 온 관객들에게는 온전히 음악을 감상하는 분위기를 해친데 대한 분노를 낳게 한다. 국민개인소득이 3만 달러가 넘은 선진국 대한민국이라도 이런 감지능력이 둔하다면 우리는 아직 멀었다.

베를린 필하모니커가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홀에서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 음악회를 연 적이 있다. 러시아 관객은 많이 늦었다. 시작 할 때 2/3정도 되었던 점유율은 연주회가 끝날 때쯤 거의 만석이 되었다. 연주 중에 2층에서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모든 것이 DVD에 담겨있다. 있는 힘을 다해 연주한 래틀과 단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어떤 인상을 러시아에서 받았을까?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 연주를 시시하게 볼만큼 러시아인들의 예술성은 높고 자존심이 강하다고 느꼈을까? 아니면 러시아의 문화의 수준을 형편없다고 평가했을까?

관객이 부지런해야, 또 치열해야 우리의 문화가 산다. 음악회에 늦는 관객이 많을수록 우리는 찌질 한 후진국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 관객들이 그리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지휘자 홍준철

세종대학교, 동 대학원 졸업,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 22년 동안 지휘, 파주 북소리합창단 지휘자, 성공회대학교 대우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세종문화회관 이사역임. 지휘전문서 <합창지휘자를 위하여>, <합창단원을 위하여> 출간, 현 퇴촌(退村)하여 집필활동에 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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