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음악 텃밭은 건강한가? 모든 음악가들이 자유롭게 간섭받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환경에 관한 질문이다. 또한 그래서 우리가 지어내는 음악이 수준 높고 감동적이냐는 질문이다. 왠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하지 않다고 대답 할 것만 같다. 30년 넘게 필자가 경험한 현장과 잡지, 뉴스, 인터넷 정보를 종합해보면 우리네 음악내용이 튼실하지 않고 빈약하게만 보인다. 왜 그럴까? 양적으로는 많은데 골라먹을 것이 없는 부실한 밥상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공기관의 음악에 대한 무지, 국가권력의 뒤틀린 남용, 아직도 벋어나지 못하는 반공이념, 찌질한 좌와 우의 편 가르기 이분법, 고향과 출신대학을 중심으로 한 학맥과 인맥, 음악을 유흥정도로 여기는 낮은 사회의식, 권력과 돈에 대한 브레이크 없는 욕망, 원인도 잘 모르겠는 복합된 사회적 분노, 희망할 수 없는 음악가 개인의 어두운 앞날......,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음악 텃밭을 이루고 있는 것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잘 자라지 못하고 오염되고 병들고 시들어 가고 있다고 보여 진다는 것이다. 그것도 최근까지 말이다.
저는 처벌을 받겠습니다. 그렇지만 제 작품들이 자유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유세계 음악청중에게 소개될 때는 제발, 간첩의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 간첩의 작품이라는 누명을 쓰지 않도록 재판장님께서는 다른 죄를 저한테 주셔도 간첩죄만은 깊이, 그 작품들을 위해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작곡가 윤이상
1968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동베를린 간첩사건 재판 때에 작곡가 윤이상이 최후진술로 한 말이다. 국가는 조국을 사랑하는 한 음악가를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묶어 납치하고 고문하고 일방적 재판을 하여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한국과 동양의 음악과 사상을 현대음악으로 풀어낸 세계적인 작곡가의 몸과 영혼에 조국의 정권은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주고 만 것이다. 지구촌 음악계에서는 최고의 작곡가였지만 국내에서는 별로 알지 못하였고 오직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로 그를 채색할 뿐이었다. 50년 전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이 비인간적인 처우를 견디다 못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는데 이제 세상은 그 사람들이 개혁을 주도한 전임 사장을 내쫓기 위해 날조한 이야기라고 고소를 당해 조사를 받고, 서울시향 사무실은 습격을 받았고 이 피해자들이 수백 시간 동안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왔습니다.... (중략)..., 제가 여러분의 음악감독으로서의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유감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앞에서 얘기 했다시피 음악보다 중요한 게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인간애입니다. 이 인간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여러분과 함께 음악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지휘자 정명훈
지휘자 정명훈이 2015년 말에 사의를 표하며 단원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이로서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교향악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국산 교향악단을 보유할 수 있는 문턱에서 좌절되었다. 당시 사회적인 인식은 정명훈은 15억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 것도 과하고 항공권과 보좌역 인건비 횡령의 혐의가 있으니 사임하고 다른 지휘자를 선임하면 된다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을 하였다. 정명훈이 아니면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후 검찰은 곡절 끝에 시향대표와 정명훈에게 무혐의 결정을 내렸고 쌍방 간 명예회손 고발건만 남으면서 종결로 가고 있다. 이 허무한 싸움으로 대한민국은 10여년 넘게 공들여 만들어 온 국가적 문화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갔다. 3~4년 전의 대한민국 문화계의 모습이다.
한술 더 떠 2016년에는 정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9,473명의 명단을 작성하여 지원금 배정 등에 불이익을 주고 있었던 사실이 폭로되었다. 해당자는 부인했지만 이는 특검 조사결과 사실로 확인 되었고 문화부 장관과 청와대 비서실장이 구속되었다. 3년 전 우리의 모습이다. 이밖에도 현장에서는 권력과 돈이 빚어낸 문화적 참사가 최근까지 연이어 있어왔다.
우리의 음악적 텃밭은 건강한가? 이 질문은 부정문이다. 건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확인된 과거형이고 현재 진행형이며 이 텃밭에서 나는 음악을 후대에게 물려 줄 수밖에 없는 미래형이다. 우리가 이 질문을 반복해서 곱씹어야 할 이유이다. 윤이상 작품을 지휘하고 연주한 오보이스트 하인쯔 홀리거가 몇 년 전 무대에서 한 말이 가슴에 박힌다. 그는 매우 품위 있고 진심을 다해 잔잔하게 이야기 하였지만 무지몽매한 우리들에게 주는 회초리에 다름 아니었다.
위대한 작곡가는 그 나라의 부분이고 그 나라 문화의 진정한 보물입니다.
지휘자 홍준철
세종대학교, 동 대학원 졸업,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 22년 동안 지휘, 파주 북소리합창단 지휘자, 성공회대학교 대우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세종문화회관 이사역임. 지휘전문서 <합창지휘자를 위하여>, <합창단원을 위하여> 출간, 현 퇴촌(退村)하여 집필활동에 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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