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토전생[穢土?生] - 8 : 타카시 요시마츠

노승주 객원 기자 승인 2019.04.17 05:59 | 최종 수정 2019.04.17 06:05 의견 0

2003년, 아톰의 생일을 맞아 철완 아톰 애니메이션의 리메이크판이 방영되었던 것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번쩍거리는 유광 헤어와 원통형 몸매를 가진 주인공으로 큰 인기를 끈 이 애니메이션은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SBS를 통해 방영되었었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OST들을 작곡한 이가 현업에서 활동 중인 현대음악가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바로 오늘 소개할 1953년생의 일본 작곡가 타카시 요시마츠다.

 

작곡가 타카시 요시마츠(Takashi Yoshimatsu)

분명 놀라는 이들도 있으리라, 현대음악 작곡가가 그와같이 대중적인 애니메이션의 음악감독을 맡았다는 게 잘 상상이 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사실 일본에서 현대 음악가와 영화, 영상 미디어 사이의 협업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당장 그의 앞세대를 대표하는 일본의 현대음악 거장 토루 타케미츠 역시 구로사와 아키라를 비롯해 수많은 감독들의 영화음악에 참여했다.(아래에서 더 서술하겠지만, 요시마츠의 삶은 일견 타케미츠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들과는 반대로 영화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순수 기악 음악 작품에도 관심을 두고 공연 및 앨범 제작을 하는 아티스트로는 류이치 사카모토를 꼽을 수 있다.

어쨌든 그의 작품이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음악에 잘 맞는 것은 사실 그의 음악 스타일 자체가 그 장르들과 상당히 닮아있는 탓이다. 14세 때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에 매료되며 클래식 음악 작곡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다른 동세대의 작곡 학도들이 그러하듯 한때 무조성적 현대음악에 크게 경도되었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동시대 음악들의 비음악성에 큰 회의를 느끼고 초기작 <<Threnody for Toki>>를 끝으로 무조성 음악과 완전히 절연한다. 그리곤 그의 표현대로 한다면 '신 선율주의'의 음악을 추구하며 일본 전통어법과 재즈에 큰 영향을 받은 음악들을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일본 작곡가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견고한 전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한다. 세계 음악계가 일본 음악가들에게 기대하는 이미지, 작곡가들 자신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오는 자국의 어법들은 그들에게 도저히 그냥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 일종의 제약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 남들지 갖지 못한 그들만의 강력하고 단단한 토양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것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다. 민속적 언어를 사용하는 작곡가들은 신비로움과 조악함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할 것을 요구받는다. 민속성이라는것 자체가 적절히 활용되면 직관적으로 와닿는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동시에 조금만 정도에서 어긋나도 끝없는 상투성의 늪에 빠지기 쉬운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화와 동화는 원래 종이 한장 차이인 법, 히사이시 조와 같은 작곡가들은 아예 그것을 자신의 천진난만한 음악적 색채와 결합해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시마츠가 전통성을 다루는 방식은 어떤 도회적이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외피를 통해서다. 세련된 우울함이랄까, 분명 그런 게 있다. 한때 무조성 현대음악의 기법적 측면에 경도되어있던 사람으로서, 또 대학 시절 아마추어 록밴드의 맴버였던 사람으로서 가진 어떤 기술적, 감성적 세련성이 그의 음악에 드러난다. 이름 모를 어떤 철학자가 도시인들의 삶은 우울한 삶이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어떤 역동하는 우울감, 자조적인 밝음의 정서는 그런 그의 도회적인 면모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리라.

앞서 그와 토루 타케미츠의 유사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했다는 점에 있어서도 비슷하다. 1930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제대로 현대음악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타케미츠처럼 요시마츠 역시 대학 때 잠깐 있었던 개인 교습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전문적으로 작곡을 배운 적이 없다. 대학의 학부 역시 음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공대를 다녔다. 그의 삶에서 음악적 경험은 소학생 때 2년 남짓 받았던 피아노 교습, 고등학생 시절의 교내 오케스트라 활동, 대학 시절의 아마추어 밴드 활동이 전부였다.

대학 입학 후 그는 자신의 전공인 공학은 내팽개쳐둔 채 일본 내의 작곡 콩쿠르에 응모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2세에 그의 앙상블 작품 <<일그러진 진주의 목가 歪んだ珠の牧歌>>가 마이니치 음악 콩쿠르 작곡 부문에 당선되는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다양한 작곡 콩쿠르에 입상하며 경력을 다진다. 그를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올려준 작품은 1981년부터 4년에 걸쳐 작곡하여 1985년에 발표한 기타 콘체르토다. '1985 현대음악 전시회'에 당선되며 연주된 이 작품은 도쿄 필하모닉 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된 후 문화성 무대예술 창작 장려상 및 레코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다. 이후 그는 일본 국내의 교향악단으로부터 수없이 작품을 위촉받고 드라마나 영화의 ost등을 작곡하는 작곡가가 된다. 국내의 콩쿠르 입상만으로 이같은 클래식 작곡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는게 우리나라의 여건에서 보자면 참 부러운 일이다.

 

주목을 받은 후 그의 음악적 커리어는 화려함의 연속이었다. 28세엔 도쿄 키드 브라더스의 뮤지컬 음악을 작곡해 그 작품이 미국 브로드 웨이에서 공연되었다. 30세엔 자신의 음악과 비주얼 아트 작품을 결합한 개인전을 열기도 한다. 이 시기부터 클래식 입문, 음악 미학 등을 다룬 저서를 출간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출간된 책의 권수만 십수권이다. 40대 이후로는 각지에서 밀려들어 오는 위촉과 자기 곡의 관현악단 상시 프로그램화로 풍요로운 시절을 보낸다. 실로 대단하고 선 굵은 인생이다.

작곡가로서의 생활과 국제적 명성이 점차 안정되어간 30대 중반부터 그는 기존의 단편적인 작품에서 벗어나 장대한 규모의 교향곡을 쓰기 시작한다. 민주 음악협회의 위촉으로 37세에 작곡한 교향곡 1번을 시작으로 총 6곡이 세상에 나와 있는 그의 교향곡들은 노회한 작곡가의 여유로움이 뭍어나는 서사적인 작품들이다.

그의 작업방식 또한 스타일이 충만하다. 그는 작곡을 시작하기 전 악상을 스케치하는 언어적 아이디어들의 모음을 만든다고 한다. 말이 거창하지만 실은 노트에 생각나는 환상적 이미지들을 싹 다 써두는 것이다. 이후 그는 오선지를 꺼내 그 이미지에 걸맞는 선율과 화성들의 파편을 하나하나 만든다. 그는 이 파편들을 그가 고등학생 때 직접 만든 캐비넷에 편성별로 분류 보관해 두었다가 본격적인 작곡이 시작되면 꺼내어 부분부분을 자르고 붙인다고 한다. 이렇게 완성된 스케치는 피아노 악보의 형태가 되는데 이것을 다듬은 후 오케스트라로 펼치는 게 그의 작업 방식이다.

 

이제 좀 더 구체적인 작품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그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 중 하나가 바로 새다. 교향곡들을 비롯해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첼로 협주곡, 마림바 협주곡 및 각종 오케스트라 음악에서 그는 새라는 테마를 직간접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메시앙을 강력히 떠오르게 한다. 20세기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프랑스 아카데미의 기둥 중 한 명인 메시앙은 자신의 제자들이 주도한 과격한 무조성음악과 거리를 두며 최후까지 화성과 선율의 아름다움을 수호한 작곡가 중 하나다. 그가 음악에서 즐겨 이용했던 테마가 바로 새와 새의 울음소리인데 이는 그가 가진 특유의 카톨릭 신비주의에서 비롯된것이다.

메시앙의 새가 자연물에 대한 어떤 종교적 찬미의 성격이 짙었다면 요시마츠의 새는 그보단 일종의 인간적 회한을 표상하는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성격은 그의 현악 오케스트라 작품 <<...and brid are still...>>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음악을 들어보자. 죽은 동료의 죽음을 침묵으로 추모하는 새들의 이야기를 담고있는 이 작품은 평온한 가운데에 이는 어떤 파문으로 시작된다. 이 파문은 마지막까지 곡의 저변에서 몸집을 달리해가며 흐르는데 이처럼 곡의 전개를 어떤 감정적 계기나 힘에 의한 통제에 맡기는 것은 그와 같은 신낭만주의 경향 작곡가들의 특징이다. 비슷한 음소재, 음향, 선율, 섹션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그것이 등장할때마다 그 자리엔 이미 다른 감정적 상태가 마련되어있고 때문에 같은 것도 더이상 같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있어야 할 음, 소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위치해있는 감정적 적확함의 미학이다.

 

파문은 벽에 부딪혀 또 다른 파문을 생성한다. 일렁이는 물결, 그 속에서 분절된 세포들이 점차 거세게 유영한다. 곡의 절정에 이르면 이전까지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둔탁한 피지카토 타격음이 들려온다. 마치 무언가를 종용하듯이, 그 소리에 의문을 가질 때쯤이면 압도적 음향의 선율이 그 의문을 뒤덮는다. 이후 나타나는 조용한 회상적 프레이즈. 음악적으로는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으나 그 감정적 계기는 결고 전형적이지 않다.

이 곡을 비롯해 그의 엇비슷한 작품들에 딸린 시적 정서는 분명 어떤 죽음의 이미지다. 곡 소개에서 작곡가 본인이 밝히고 있듯이 말이다. 그의 음악에선 이런 죽음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주마등을 표상하며 썼다는 교향곡 1번과 레퀴엠의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교향곡 2번도 마찬가지다. 아마 그가 이같은 죽음의 이미지를 새와 결합시키곤 하는 것은 특유의 낭만주의적 상상력의 발현일 것이다. 낭만주의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죽음과 소년/소녀라는 테마의 병치다. 극도의 생명성을 가진 존재가 끔찍하게 죽어갈 때의 대비적 효과로부터 나오는 멜랑콜리, 제아무리 아름답고 젊은것일지라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처연한 감정, 그리고 그 틈새에서 희미하게 솟아오르는 어떤 에로틱한 느낌이 낭만주의 회화의 근간을 이룬다.

요시마츠의 새는 정확히 이런 낭만주의적 죽음의 신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땅에 매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땅에서 날아올라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는 새의 이미지는 얼마나 낭만적인가, 하물며 그러한 새의 죽음은? 이러한 그의 판타지는 암으로 인해 입원한 두 여동생을 생각하며 작곡했다는 94년작 <<새와 무지개를 위한 아가 鳥と虹の雅歌>>에서 특히나 절절하게 드러난다.

 

지금까지 타카시 요시마츠라는 음악가를 개인사적 측면과 작업적 측면에서 살펴봤다. 그러나 그를 이해하는데에 절대 빼놓아선 안될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가 이와같은 모습으로, 이와같은 위치에서, 이러한 기획들을 하며 작곡가로 살아가는게 가능한것은 그가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거대한 클래식 음악 시장이, 일본의 체계적인 교향악단 인프라가, 학교 교육에서부터 시작되는 일본의 탄탄한 음악 문화가 타카시 요시마츠라는 작곡가를 보족한다. 앞서 그의 작업을 묘사하며 일본 전통과 재즈, 현대음악이라는 다종다양한 요소의 결합을 언급했지만 그같은 색깔이 빛을 발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국내 콩쿠르 입상자에게 주어지는 일본 음악계의 그 기회들 덕분이다. 사실 이번 글을 통해 필자는 독자들이 타카시 요시마츠라는 개인과 함께 일본 음악계에서 살아가는 어떤 작곡가의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것을 통해 우리를 다시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66세인 그는 각종 방송과 라디오 출연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신작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3년여에 걸친 이같은 공백은 아마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리라 믿는다. 그런데 작년 즈음, 느닷없이 그가 일본 현대음악협회와 작곡가협회를 탈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웹을 뒤져봤지만 아쉽게도 왜 탈퇴한 것인지 자세한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불안감이 든다. 작품 활동의 휴식과 급작스러운 각종 협의회 탈퇴, 어머니의 간호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소식. 혹시 이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에게 변고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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