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여 힘내십시오.

강호성 기자 승인 2019.02.26 13:35 | 최종 수정 2019.02.27 09:32 의견 0

서양역사의 아주 먼 옛날 음악가가 대접을 받던 호시절이 있었습니다. 한 공동체의 영적인 제사를 위해서 신과의 소통 하는 음악을 담당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음악가는 긴 수련기와 어려운 관문으로 뽑았습니다. 그런 만큼 그 사회에서 귀한 몸값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인 지금 이것은 화석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이후 인류의 역사는 땅 따먹기를 반복함으로서 부족에서 국가의 형태로 비대해졌고 왕권과 종교의 권력은 어마무시하게 커졌습니다. 어느 때는 종교가 왕보다 더 높은 권력을 가진 때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국가권력이 더 커졌지만 종교의 영향력도 절대로 무시 못 할 정도는 유지하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초기의 모습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 음악가에 비해서 말입니다.

음악가는 국가나 종교처럼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음악은 영혼이 고픈 사람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예술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혼이 고픈 것을 미처 알지 못합니다. 개미와 베짱이 동화가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열심히 일해서 먹을 것을 비축한 개미 즉 생산 활동과 경제 활동을 하는 개미가 위대해지고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는 뒷전에 밀려 버렸습니다. 특히 이런 현상은 후진국일수록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인류의 3대 난제인 전쟁, 기아, 질병은 거의 대부분 극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고픈 것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배고파 죽는 사람보다 비만의 후유증으로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고 이보다 영혼이 고파서 자살하는 숫자가 기하급수처럼 늘어나는 현세대에도 인간은 아직도 배고픔을 걱정하고 권력과 돈이라는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음악을 대하는 수준은 얼마만큼 인가요? 즐거움, 유흥 정도에 머물러 있지 않나요? 소수를 제외하고는 음악이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수준 아닌가요? 사회지도자들도 음악을 잘 알지 못합니다. 모르니 오로지 경제, 경제만을 외치고 더 모르는 백성들은 더 경제, 경제를 외칩니다. 배 터지게 먹고도 배고프다고 아우성입니다. 참 웃픈 현실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순수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은 형편이 더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수입이 많지 않으니 소수를 제외하면 겨우 먹고사는 기준의 이하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유학까지 다녀와도 소수만이 악단에 고용되어 겨우 먹고 살고 대부분은 생계가 막연한 얼치기 음악가로 떠돌기 마련입니다.

음악의 심오한 깊이를 모르는 관료들은 대중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수준 낮은 음악회를 경제 논리에 입각한 저렴한 개런티로 만들어 갑니다. 해도 되는 것보다 하면 안 되는 법칙이 난무합니다. 결국 대중과 연계해야 한다는 미명아래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감시하고 통제합니다. 결국 빵과 직결되기 때문에 음악가들은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하고 빵을 주는 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방향으로 적당히 휘여만 갑니다. 음악가가 자기 고집으로 음악하기가 어려운 토양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 우리는 순수한 음악의 힘을 믿습니다. 음악이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삶의 희망을 주는 강력하고도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공기처럼 값으로 매겨지지 않지만 청정한 공기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미세먼지를 뒤집어쓰고 나서야 알 듯이 음악도 분명히 그렇게 평가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을 표현하고 보이지 않은 분노와 슬픔을 위로하고 이곳을 떠나 감동의 엑스타시(Extasis/황홀경)을 경험하고 다시 돌아와 살아갈 힘을 내는 영혼의 밥이라는 것을 알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여 그 많은 권력자들의 이름은 후대에 잊히지만 음악가의 이름과 작품들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을 믿습니다. 몇 백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다시 살려내는 위대한 작품들을 그리고 세상의 그 어느 것 보다도 오래 남아 후대에게 전해 내려가는 인류의 문화유산, 영혼의 밥이 됨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궁핍을 참아내며 음악을 하게 만듭니다. 이미 받은 재능은 우리를 다른 직업으로 가지 못하게 작동하고 천형처럼 들러붙어 가난의 길을 가게 하지만 부와 권력이 다가가지 못하는 영원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죽어가는 생명들을 위한 음악을 위해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헌신하고 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음악의 성숙을 위한 자신과의 싸움도 모자라 삶까지 걱정해야만 하는 고난의 길, 수도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하여 음악가의 길은 거룩한 길임을 믿습니다. 평생을 일하고 죽어서도 고기와 뼈와 내장과 가죽까지 모두 내어주는 소처럼 음악가도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또 대자연과의 교감을 위해 받은 재능을 모두 쏟아내는 위대한 삶이라 믿습니다.

지금 처지가 비루하고 어렵더라도 음악가 여러분 힘내십시다. 비록 그들이 음악에 대해 무지하며 권력을 빌미로 음악을 무시하고 음악가들을 가벼이 여기기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몰라서 그런 걸 ......, 모르는 개미를 아는 배짱이가 용서할 밖에요. 우리는 그저 우리가 받은 만큼 온전히 남김없이 베풀고 가면 될 터이니까요.

음악가여 힘내십시오.

 

지휘자 홍준철

세종대학교, 동 대학원 졸업,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 22년 동안 지휘, 파주 북소리합창단 지휘자, 성공회대학교 대우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세종문화회관 이사역임. 지휘전문서 <합창지휘자를 위하여>, <합창단원을 위하여> 출간, 현 퇴촌(退村)하여 집필활동에 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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