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음악을 사랑하는가?

홍준철 지휘자 승인 2019.01.17 21:10 | 최종 수정 2019.01.21 15:29 의견 0

"당신은 음악을 사랑하는가?"

음악을 사랑해야 음악으로부터 사랑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남녀관계가 그렇고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사랑을 받으려만 한다면 오래 못 간다. 정성을 들여야 음악의 문이 열린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이는 턱없이 부족하다. 많은 음악가들이 마음으로만 음악을 사랑해서 결국엔 음악에게 버림받은 모습을 수없이 보아온 터다. 연습안하면서 음악을 사랑한다는 말만 하는 것은 거짓이고 위선이기 때문이다. 몸으로 사랑해야 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죽도록 사랑해야 희미하게라도 길이 보이는 것이 음악이다. 그러면 어떻게 음악을 몸으로 사랑한다는 것인가? 사랑하는 대상이 만지거나 잡을 수 없는, 시작하는 듯 했으나 이내 사라지고 마는 시간의 예술인데 어떻게 몸으로 사랑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딱 한가지이다. ‘ 연습하는 것이다. 피나는 연습이 음악을 사랑하는 것이다.’

연습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땀을 흘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물론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이걸 참아내며 올라야 한다. 높은 산위에 올라서는 다시 그 산을 내려 와야 한다. 그리곤 다른 산을 다시 오르는 참으로 미련한 짓을 해야만 한다. 그러는 동안에 아주 천천히 음악의 구석구석을 알게 되고 또 튼튼한 음악적 몸이 만들어지며 음악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를 수없이 반복하게 되면 모르는 산을 오를 때도 예전처럼 힘들지 않는다. 음악이라는 산이 그만그만하다는 진리를 알기 때문이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산악인이 자신을 온전히 자연에 담그고 그 품안에서 자신을 발견함에 있는 것이나, 수도승이 오랜 시간을 구도의 길을 가다가 마침내 큰 깨우침을 얻는 것처럼 음악도 음악으로 한없이 오르는 연습을 하다보면 자신이 음악이고 음악이 자신인 일치의 순간이 올 것이고 그곳에서 온전한 자유와 음악이 가진 진정한 영혼의 힘을 느끼는 경지까지 가게 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러려고 독하고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상처받고 자존심상하고 멈추고 싶은 모든 것들을 눈물겹게 이겨내는 처절함이 필요하다. 나무가 꽃을 피우려면 자신의 몸을 찢어내고 피로 물 드린 이파리를 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음악은 도(道)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또한 연습은 언제나 벽에 서있는 일이다. 다음 세계를 위해 그 벽을 깨고 나아가야만 하는 실로 외롭고 슬픈 자리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벽은 깨지지 않을 견고한 성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더구나 이 벽은 하나가 아니다. 깨면 또 있고 깨면 또 있다. 평생을 깨도 다 못 깰 만큼의 벽이 자신 앞에 있다. 그러니 연습을 하면 할수록 슬럼프가 오는 것이다. 슬럼프는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하여 돌아서는 순간 자신의 자리는 거기까지가 된다. 극복되지 않는 슬럼프는 없다는 믿음이 있다면 좀 쉬었다가 라도 앞으로 가야하는 것이 음악의 길이다.

순간순간 태어나고 소멸되는 것이 음악이지만 소리의 군상들이 만들어 내는 환희의 세계야 말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그 무엇이며 그 어떤 행복보다 영혼을 고스란히 채우면서 우리를 황홀하게 한다. 그 경지까지 가려면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한다.

음악을 한다고 다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요즘 뼈저리게 느낀다. 덜된 음악은 안 듣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연습이 부족한 음악은 사랑이 채워져 있지 못함으로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에게 악의적인 영향을 줄 때가있다. 미필적 고의는 아니더라도 음악을 듣는 귀가 있는 관객에게 행한 횡포요 테러일 수 있는 것이다.

연주는 연습의 모든 과정을 낱낱이 고발한다. 더구나 인간적인 관계, 단원들의 상황, 지휘자의 고민까지 모조리 고자질하는 자리이다. 결과를 보면 과정이 보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과정이 들어나는 결과는 수없이 많다. 스포츠가 그렇고 시험이 그렇고 농사일이 그렇고 경제가 정치 등등이 그러하다. 무대에서 펼쳐진 순간만 봐도 그동안의 모든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음정이 떨어지는 것, 프레이징을 끌지 못하는 것. 감정이 실리지 않는 것, 자신 없는 부분이 들어 나는 것 등등 ......, ‘더 연습했었어야해... 더 치열하게 했어야해... 그렇지만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는 변명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서 실패의 이유를 찾는 사람이 가장 못난 음악가이다.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은 당연한 진리이다.

치열한 연습을 하지 못한 음악들은 음악의 사랑이 함량미달 되어 음악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게 되고 더구나 그 사랑을 관객들에게 나누어 주지 못함으로 관객에게 버림받는다. 사랑을 품지 못한 음악들은 분노를 낳고 소음들만 생산하게 됨으로서 대기를 오염시키며 자신 또한 그 오염물을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다. 연주자들이 이점을 잘 모른다.

그러니 음악을 사랑한다면 치열하게 연습해라. 그것이 고통이라면 그 고통을 즐겨라. 그것이 아픔이라면 이를 악물고 버텨라. 기어이 깨리라, 결단코 이겨내리라고 마음의 심지를 굳건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귀신도 홀릴 만큼 기량을 쌓고 뜨거운 마음을 더해라. 그래야만 음악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요, 음악으로부터 사랑받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다.

소설가 김훈은 아직도 자신의 소설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보지 못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도무지 이 단어가 자신의 손아귀에서 자유롭게 구사되지 못한다고 했다. 너무 깊고 너무 커서 진정한 의미로서의 언어로 녹아들지 않는다고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참 얄밉도록 진실 된 표현이라고 느꼈었다. 내 가슴을 예리하게 베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나는 이 상처에 고마워하면서 자꾸 질문하고 있다. ‘ 나는 음악을 사랑하는가? ’ ‘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 나는 단원을 사랑하는가?’ ‘나는 관객을 사랑하는가?’

 

 

지휘자 홍준철

세종대학교, 동 대학원 졸업,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 22년 동안 지휘, 성공회대학교 대우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세종문화회관 이사역임. 지휘전문서 <합창지휘자를 위하여>, <합창단원을 위하여> 출간, 현 퇴촌(退村)하여 집필활동에 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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