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김재영&문지영 듀오 리사이틀, "음악이 말을 걸다"

유은결 객원 기자 승인 2019.05.19 19:14 | 최종 수정 2019.05.19 19:38 의견 0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듀오. 익숙하지만 두 악기의 매력을 모두 보여주기는 어려운 연주이다. 하지만 두 젊은 음악가,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과 피아니스트 문지영이 만났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두 사람은 셀 수 없는 국제 콩쿠르 수상 경력과 엄청난 스펙으로 연주자를 소개하는 프로필만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며, 음악이 그들의 인생에서 어떤 존재인지 열렬히 보여주고 있다. 두 연주자가 우리에게 들려줄 음악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김재영 & 문지영 듀오 리사이틀 리허설 현장 ⓒ목프로덕션 페이스북 페이지

지난 17일 8시,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에서 열린 “김재영 & 문지영 듀오 리사이틀”의 첫 번째 프로그램은 모리스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단조 : 유작 소나타’였다. 이 작품은 라벨이 22세였던 1897년에 작곡되었으나 라벨의 사후인 1975년, 약 80년이 지난 후에야 출판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스무 살의 나이에 유언장과도 같은 유작 소나타를 작곡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반복되는 선율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바이올린이 이끄는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든다. 점차 고조되어 사람이 듣기 힘들 정도의 높은 소리가 등장하고, 해결되었다가 또다시 높은 영역의 소리가 등장하고, 계속해서 긴장의 상태로 우리를 이끈다. 긴장감 속에서 등장하는 아름다운 선율은 물 위를 걷는 듯한 느낌으로 등장하다가 어느 순간 폭풍우가 몰아치듯이 강하게 변하고, 그가 생각하는 죽음의 정의를 알려주듯이 써내려간 음표들은 바이올리니스트의 활 안에서 생생히 나타난다.

두 번째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바이올린 소나타 라단조’는 라벨과 사망연도가 같은 동시대의 작곡가이지만 전혀 다른 음악으로 바이올린 소나타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첫 음부터 파워풀한 강렬함을 보이며 두 악기가 서로 경쟁하듯이 각자의 소리로 승부를 걸며 정열적으로 연주되던 곡은, 이내 서로에게 동화되어 아름다운 하나의 음악으로 펼쳐졌다. 그 변화를 채 인식하지도 못한 감미로운 선율은 2악장의 시작을 알리고, 관객들이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곡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바이올린의 피치카토 주법은 피아노의 통통 튀는 스타카토와 정확한 타이밍에서 함께 연주되어 한 악기로 소리 나듯이 경쾌한 느낌을 주었다.

세 번째 작품인 에르네스트 블로흐의 발셈 모음곡은 ‘세 개의 유대시’라는 부제가 눈에 띈다. 스위스 출생 유대인이었던 블로흐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작곡하였다는 이 작품은, 일반적인 클래식이 아닌 민속적인 선율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함께 넓은 음역을 모두 사용하며 풍부한 음악적 기법이 돋보였지만, 그 속에서 슬픔을 억누르는 듯한 감정표현이 보여 바이올린의 한 음 한 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관객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내림 마장조 op.18’은 바이올린의 멜로디가 피아노의 부드러운 선율과 잘 어우러져 듀오 리사이틀의 가장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곡이었다. 감미로우면서도 그 속에 강렬함을 품고 있는 소리로, 모티브 선율이 강하게, 부드럽게, 때로는 슬프게 변형되며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바이올린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 악장이 막 끝났을 뿐인데 마음에서 박수가 우러나왔다. 한 마디 안에서도 수백 번씩 바뀌는 감정들을 쏟아내며 들려주는 그들의 음악은, 극적으로 변화되는 음악을 모두 표현해내며 음악에 담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두 연주자의 듀오 리사이틀은 오늘 하루의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보름달이 뜨는 밤, 그리고 여기에 더해진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완벽한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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