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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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2 19:48 | 최종 수정 2019.03.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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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지휘자 겸 작곡가 앙드레 프레빈(사진)이 지난 28일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자택에서 8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피아니스트이면서 작곡가로 클래식과 재즈, 할리우드 영화음악 등 장르를 넘나들며 명곡을 남긴 프레빈은 세계적인 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지휘자를 지내며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이름을 떨쳤다.
1929년 독일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프레빈은 유명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에 의해 특출난 음악적 감각이 발견 되었고 6세 때 베를린 음악원에 입학했다. 이후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이후에도 프레빈은 음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당시 할리우드 유명 제작사들과 함께 영화음악 작업을 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영화 ‘지지’(1958년), ‘포기와 베스’(1959년), ‘당신에게 오늘 밤을’(1963년), ‘마이 페어 레이디’(1964년)를 통해 총 네 번의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이후 그는 클래식 음악계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자 할리우드를 떠났다.
프레빈은 1967년 휴스턴 심포니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이후에도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 LA필하모닉, 런던 로열 필하모닉 등 세계적인 악단의 지휘자로 활동했다.
한편 프레빈은 비범한 음악 인생 못지않게 평범하지 않은 사생활로도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다섯 차례나 결혼한 프레빈은 음악적 역량만큼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아내였던 미국 여배우 미아 패로와는 3명의 자녀를 뒀고, 이후 3명의 자녀를 입양했다. 그때 한국에서 입양한 딸 순이가 이후 양어머니 패로의 동거남이었던 영화감독 우디 앨런과 결혼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한편 프레빈의 별세 소식을 들은 정경화는 “의심할 바 없는 천재였고, 온화한 인품으로 주변을 따뜻이 챙겼던 앙드레, 고이 잠들기를”이라고 추모했으며, 전 부인 패로는 트위터에 “아침에 다시 만나요, 사랑하는 친구. 장엄한 교향곡들 가운데 잠들기를”이라고 그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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