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보기] 시인 문보영 “태국, 일기, 친구”(인터뷰)

노수현 객원 기자 승인 2019.03.18 12:08 | 최종 수정 2019.03.26 10:03 의견 0

“태국, 일기, 친구”

시집 『책기둥』의 주인

배틀그라운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인

유튜브 채널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를 운영하는 시인

문보영 시인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을 담으려고 유튜브를 한다는 문보영 시인의 모습은 태국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순간에는 그 바람만큼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그것이 슬프든 기쁘든.

‘일상을 사는 연습’을 하려고 태국에 다녀왔다는 문보영 시인을 차가운 겨울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만나보았다.

 

유튜브에 올리신 태국여행 브이로그가 참 인상깊었습니다. 여행은 잘 마무리 되셨나요?

“잘 다녀왔습니다. 태국을 가면서 지루한 브이로그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갔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사실 혼자 지내면서 ‘일상을 사는 연습’을 하고 우울증에 빠지지 않기 위해 태국에 갔어요. 밥 잘 먹고 좋은 모습을 제 자신에게 보여주려고 브이로그를 찍었어요. 그래서 영상 자막이나 큰 재미나 문화 콘텐츠로서의 브이로그를 만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제 한국에 왔으니 ‘조금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 생각 중이에요.

그리고 태국에는 햇빛이 아주 많습니다.(웃음) 살기도 좋은 것 같네요.”

 

인터뷰에 왜 응하셨을까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인터뷰를 거절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저에게 관심 있는 분들이 궁금증이 있으시고, 제가 그것을 풀어드릴 수 있다면 좋은 자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홈페이지를 보니 시인이 거기 있으면 튀지 않을까 싶어서(웃음).”

 

어떤 질문을 좋아하세요?

“딱히 선호하는 질문은 없지만, (이 인터뷰의 질문에서) 반가운 질문은 있었어요.

친구와 일기가 들어가는 질문이에요. 그 두 단어에 제가 잘 반응하는 편이에요. 웬만하면 그 단어가 들어가는 글들을 필사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어제도 카프카의 일기를 읽다가 그 문장을 받아쓰고 있었어요.”

 

카프카 이야기를 평소에 자주 하시는 것 같습니다. 혹시 카프카를 좋아하시는 건지,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동일시는 전혀 안 하고(웃음). 요즘은 카프카를 읽어봐야겠다 생각해서 이번 시 수업에도 넣었어요. 저와는 너무 다른 작가에요. 카프카뿐만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작가는 문체에 있어서는 저와 너무 달라요. 익살이 없고, 추구하지도 않아요."

 

‘현대 시들을 읽었을 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는 반응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 평생 들을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우연히 좋아하는 ‘글쓰기’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장르라는 불운이지만 저는 이 불운을 외면하고 사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저도 시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물음을 가졌지만 이제는 그 물음을 스스로 생략하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글쓰기도 그래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서 일기를 쓸 때도 있지만, 카프카와 같은 작가들의 일기나 작품을 읽으면 정신이 드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많은 사람의 입맛을 고려하고 있을 때, 시를 등지게 되는 것 같네요.”

 

태국을 다녀와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태국 앓이’를 합니다. 스스로 찍은 유튜브 브이로그를 보며(특히 태국의 햇살)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좋겠네요. 첫 시집을 나오고 나서 무기력증에 빠져 ‘무엇을 쓰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욕망을 되찾기 위해 브이로그를 시작 한 것처럼 (하고 싶은 것을) 올해부터 천천히 찾고 있어요.”

 

그렇다면 요즘 하시는 일이나 계획이 있으실까요?

“요즘에는 작은 시집을 계획하고 있어요. 아직 하나도 쓰지 않았지만.

게임에 관심이 생겨 ‘배틀그라운드’에 관한 시를 써볼 예정이에요. 작년에 ‘배틀그라운드’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지만, 게임에 매료되어서 더 많이 쓸 것들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시를 써봐야 틀이 잡히고 발표될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태국에 꽤 오랫동안 계셨는데, 그곳에 다녀온 의미는 무엇일까요?

“태국에 ‘일상을 사는 연습’을 하러 갔고, 다녀와서도 그 일상을 끌고 가고 싶어서 연습 중이에요. 아침에 제때 일어나고, 밥을 챙겨 먹고, 산책을 하고, 너무 우울해하지 않고, 소중한 것들에 웃고, 마카롱을 먹으면서 기뻐하고 없으면 우울해지는 그런 소박한 삶을 살고 싶어요. 태국에서는 그렇게 산 것 같아요.”

 

르포 문학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에세이적인 시, 에세이적인 소설에 관심이 많아요. 일기를 에세이보다 좋아해요. 둘의 구분은 잘 모르겠지만, 카프카의 일기도 에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요. 카프카의 일기는 모든 문장들이 서로 관심이 없어서 제목이 달릴 수 없는 글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하는 생각과 비슷해서 부담을 주지도 교훈을 주지도 않고, 한 주제로 수렴되지 않아서 숨 막히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일기라고 생각하고 이런 부분들이 시의 비약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고전적인 질문이지만,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는 무엇일까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는 모호해요. 모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데, 영화 ‘무드 인디고’에서 나온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지어 냈으므로 모두 사실이다’라는 구절이에요. 되게 독특하죠? 근데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해당하는 말인 것 같아요. 카프카도 그렇고요. 그의 소설이 좋은 이유는 상상력보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좋아요.”

(영화 ‘무드 인디고’의 원작은 소설 ‘세월의 거품’이다.)

‘블로그의 일기들’이나 ‘일기 딜리버리’, 유튜브의 브이로그같이 시 외적인 부분들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질까요?

“블로그에 일기를 올릴 때는 (개인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생각을 많이 하지 않지만, 일기 딜리버리를 할 때는 돈을 내고 보시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게 돼요. 모두 감사하지만 유튜브는 정말 지루할 텐데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사실, 브이로그는 우울증을 극복한 여러 계기 중에 하나에요. 제 브이로그를 직접 제가 보면서 삶의 ‘뽐뿌’를 얻는 것 같아요. (영상속 에는) 건강한 제 모습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제가 보고 모방하고 있어요. 제가 보고 싶은 모습을 넣어둔 거죠."

 

혹시 작가님에게 편한 공간은 어떤 곳일까요?

“음… 친구가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거기가 어디든. 친구가 있으면 공간이 넓어져서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 같아요. 햇빛이 많은 공간도 그런 것 같네요. 태국에 있을 때도 자주 간 카페 ‘아르떼’도 그런 공간이었어요.

그리고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시를 쓰든 일기를 쓰든 그 공간에 많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제 첫 시집에 도서관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도 제가 도서관에서 시를 써서 그래요. 그래서 요즘에는 그 시집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도서관을 안 가고 다른 공간을 전전하는 것 같아요. 도서관이 있으면 피해가요.(웃음)”

 

꼭 하고싶었던 질문입니다, 문보영 시인에게 친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에게 친구는 ‘백수’인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다 백수인 것 같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백수이기때문에 저와 같이 있어줄 시간도 많고, 공유할 수 있는 것도 많은 것 같네요.

또 다른 진짜 의미는 ‘사회 안전망’인 것 같아요. 견디기 힘들 순간에 친구들로 인해서 제가 현실로 돌아오는 것 같아요. 마치 스키장에 있는 올라가는 리프트와 그 밑의 그물같이.”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실까요?

“어떤 분들이시든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아프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늦게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럴 용기가 없었거든요. 용기가 생긴 후로는 달라졌지만, 아프시다면 주변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인 문보영

1992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책기둥』으로 제36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https://www.instagram.com/opendooropenit

https://blog.naver.com/openingdoor1

[한 번 더 보기]는 작곡가 노수현이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가진 목소리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인터뷰 전체는 팟캐스트 ‘문화 라디오, 앤티크’를 통하여 들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클래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