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서는 많이 알려진 곡들이 연주된다. 그래서 어떤 연주회에서 무슨 곡이 연주되었는지를 기억하는 일은 작곡가인 나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창작음악회의 경우 많은 연주곡들이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계속 생각나는 곡이 하나 있다. 그 곡은 시사성 있는 내용의 성악곡임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거나 과장하지 않는 작곡가의 ‘작곡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곡이었다.
그렇다면 작곡을 할 수 있는 힘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작곡이란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곡가는 그 선택된 소재들 속에서 다시 자유로워질 힘을 발휘해야 한다. 제한된 설정 속에서 최대한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작곡가에게 필요한 음악적 창의성이라고 할 수 있다.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작곡하려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
피아노라는 악기는 음악가에게 있어서 매우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악기이다. 이 일상적이고 당연한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한계를 설정하여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하는 힘을 요구한다. 작곡가는 피아노를 그의 작품 속에서 사랑스러운 애인으로, 또는 끝없는 음악적 모티브의 근원으로 삼을 수도 있다. 또한 피아노의 악기의 기능을 제한하여 음정 표현이 불가능한 타악기로 다루거나 또는 여러 가지 소리를 내는 단순한 사물로 취급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한계 설정은 하나의 음악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 뿐 아니라 작곡의 기술적 측면을 훈련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중요한 개념이다.
화성법 수업의 예를 들어 보자. 학생들은 기초적 수업 단계에서 즉각적으로 음정이나 화음의 이름과 성격을 생각해낼 수 있어야 하고 그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정확히 그 차이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또 모든 화음을 사용하여 빠르게 5도권 진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5도권 진행이 확고해지면 약간의 응용을 통해서도 커다란 효과를 누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기초가 확실해 지면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음악적 본능이, 더욱 다양한 소리로의 탐험을 시작하게 한다. 즉, 확고한 기초는 설득력 있는 규칙의 이탈로 나아가는 출발점인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여러 조성 위에서 동시에 훈련되기 힘들다면 C 장음계 위에서 편안해질 때까지 연습하면 된다. 아니 C 장음계에 머물러야 한다. 모든 장음계에서 자유롭게 화음을 구사하기 위해서 먼저 C 장음계라는 한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 머물러 보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생이 이렇게 단순한 연습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한 가지 내용이 숙련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급하게 많은 정보를 활용하려는 태도는 작곡가들이 더욱 나은 작곡가가 되는 길을 가는 데 있어서 계속적인 방해 요인이 될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내용으로 작곡가 자신을 쉽게 지치게 하고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호부터는 이러한 작곡의 힘을 키우는데 유용했던 몇 가지 매우 기초적이고 구체적인 훈련 방법들을 소개하여 작곡에의 열정은 있지만, 기초가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정직하고 겸손하게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서 편안해질 때까지 연습하자. 그것이 우리의 작품 속에 불편하게 자리 잡고 있는 수많은 불필요한 음표들을 제거하고 필요한 음들로만 작곡하는 힘을 키워주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작곡가 이수홍
작곡가 이수홍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이론과를 수석 입학 및 졸업하였으며, 음악저널콩쿠르 대상, 전국환경음악콩쿠르 금상, 서울창작음악제 등 여러 콩쿠르 및 음악제에서 입상하였다. 또한 한국작곡가회 이사, 남태평양 피지 'SUVA YOUTH CHOIR' 음악감독, 앙상블 ‘엘’ 작곡가, 음악선교단체 ‘깊음’, ‘올 댓 첼로’ 작곡가를 역임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국내외 다양한 연주회에서 연주되고 있으며 단편영화 ‘피아노 치는 남자’, 장편영화 ‘트릭’, 뮤지컬 ‘가족의 정석’에서 작곡으로 참여하였다. 현재는 백석대학원 작곡과 석사과정을 끝내고 음악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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