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곡가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자신만의 소리로 작곡하기
이수홍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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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8 19:04 | 최종 수정 2019.01.2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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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음악은 매우 다양한 매체들과 양식들로 만들어지고 있다. 진지한 작곡가라면 작업을 할 때마다 수많은 가능성 앞에서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하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그러한 양식과 방법의 홍수 속에서 작곡가들이 느끼는 또 다른 책임감은 자신만의 소리, 즉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이를 작곡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 작품을 통해 자신의 소리를 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소리를 찾아내야 할까 아니면 기존의 양식 속에서도 작곡가들은 여전히 그들의 독창적 세계를 펼칠 권리가 있는 것일까? 젊은 작곡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나의 대답은 그들이 아직도 과거의 음악을 의지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더욱 나은 작곡가가 되기 위해서 그것은 그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즉, 과거의 음악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는 의미 있는 독창적 작품을 만들기 어렵다. 사실 음악사 속에서 진실로 영향력 있는 혁신을 이루었던 작곡가의 수는 지극히 적었던 것이 사실이며 현실적으로 이 ‘새로운 소리’에 대한 맹목적 추구는 ‘이상한 음악으로 끝나 버릴 위험이 아주 높다.
작곡이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신화적인 창조 활동이라기보다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작곡가의 음악 이론적 지식이나 좋아하고 즐겨 듣는 음악들, 기법적 훈련의 정도와 그가 갖는 음악에 관한 수많은 질문과 대답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작곡가의 음악 세계가 형성되어 간다. 즉, 새로운 양식에 집착하기보다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더욱 나은 작곡의 방법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은 결국 자신만의 소리를 찾게 해 줄 것이다. 모든 작곡 지망생들의 현실적이면서도 궁극적인 소망은 더욱 새롭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소리를 전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음악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난 이후로 미루는 것이 좋다.
음악사에 대한 공부와 다양한 시대의 대가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작곡가들은 비로써 그들의 허영심과 자아도취라는 질병을 치유 받는다.
낭만시대 작곡가 슈만(Robert. A. Schumann)의 말이다. 젊은 작곡가들이 한 번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말이다.
과거의 음악에 대한 연구는 작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 답을 경험적으로 알게 해 준다. 작곡이란 수많은 가능성 앞에서 한계와 제약를 설정하는 행동의 연속이다. 학생들은 과거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학습을 통해 많은 규칙과 형식, 제약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한계들 속에서 그들이 구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작곡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보다 많은 제약이 보다 자유롭고 빠른 작곡을 가능하게 한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창의성이 높은 학생일수록 작품의 구상 단계에서 작품의 한계를 빠르게 설정하는 특징을 보인다. 무제한적인 자유 속에서 작곡을 시도하는 것은 작곡가들의 상상력을 확장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에 곧 부딫히게 만든다. 한계가 없이는 창의적 세계에 대한 더 깊은 탐험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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