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레즈는 그의 수업에서 형식, 동기 등의 음악적 개념들에 대해 설명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개념들에 대해 어떤 학구적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턱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에 우울한 표정. 그는 그 외모 때문에 흔히 건축가나 철학 교수로 오해되곤 한다. 하긴, 음악가로서 그의 개성을 생각해보면 그와 같은 첫인상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는 음악이란 곧 건축이라 생각하는 작곡가이며 음악가는 음악으로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프랑스 음악계의 이단아라 여기는 이 작곡가는 1955년 낭시에서 태어났다. 소르본대학에서 예술학과 미학을 전공하기는 하였으나 단 한 번도 정식 학생으로 음악원에 다닌 적이 없는 그의 독특한 경력은 외려 그 음악의 독자성을 설명해준다.
비록 아카데미에서 성장한 작곡가는 아니지만, 그에게는 중요한 음악적 스승이 있었다. 그가 소르본느 대학에서 공부할 때 음악학 교수로 만난 크세나키스다. 그의 학습기간 전반을 지배했던 스승 크세나키스에 대해 뒤사팽은 “크세나키스의 진정한 비밀은 그가 단순히 작곡가가 아닌 창작자였다는 점입니다.”라 말한다.
스승의 영향일까, 뒤사팽 본인 역시 작곡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 전방위적 예술가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그는 모스크바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으며 자신이 쓴 오페라의 가사를 공동작업하기도 했다.
“음악은 끊임없이 역동하는 복합물”이라는 그의 철학은 미분음의 적극적 활용, 극도의 긴장감, 분출하는 에너지라는 그의 음악적 특징으로 나타난다. 그의 음악을 다른 현대음악들과 구분되게 만드는 중요한 개성중 하나가 바로 이와 같은 복잡한 텍스쳐를 구성하는 섬세한 선율이다. 때때로 ’성악적’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는 그의 선율 스타일은 바이올린 콘체르토,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콘체르토 등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그의 음악은 종종 화성적 풍성함이 부족하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는 일견 사실인 측면이 있다. 무분별한 탈조성을 지양하는 그의 음악은 그와 비슷한 미학을 공유하는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화성적 다양성을 덜 추구한다. 그러나 그 자신이 말했듯 그것은 그의 음악에서 ‘화성적 전환 자체가 중요한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려 그의 음악은 비슷한 화성적 맥락 내에서 음의 배치와 조합을 다르게 함으로 만들어지는 수많은 예외적 가능성에 그 매력이 있다.
그는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작품에서 피아노와 타악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대부분 비평가들은 그가 미분음을 이용한 섬세한 음향제어를 추구하기에 모든 음이 단계적으로 명확히 나뉘어있는 건반악기나 음고를 섬세하게 조절할 수 없는 타악기에 거부감을 느꼈으리라 말한다.
그는 매우 천천히 작업하는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기술발전으로 작곡과정에 충분히 디지털 장비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오선지에 손으로 작곡한다. 그뿐 아니라 모든 음표를 철저하게 자를 대고 완벽한 모양으로 그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의 친필 오선지는 마치 하나의 건축 설계도면처럼 정교하다.
“펜은 너무 빨리 그려지기 때문에 신뢰하지 않는다”는 그가 그런 작업속도에도 불구하고 협주곡이나 오케스트라 소품과 같은 대작을 거침없이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중독적인 그의 작업습관 덕이다. “저는 곡을 쓰지 않고는 단 3일도 버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신체적인 반응입니다.”
작금의 현대음악계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고있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현대음악의 과도한 아카데미화일 것이다. 서양클래식은 그 일몰과 함께 음악원 전통을 유산으로 남겼다. 클래식의 적자를 자처하는 현대음악은 자연히 음악원의 학구적 분위기와 결합하여 발전해왔다. 다름슈타트와 같은 특정 학파가 살아있는 권력으로서 음악계를 지배하던 60년대에는 음악과 아카데미의 결탁이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음악원의 권력이 죽은 권력이 되고 재즈를 위시한 새로운 음악적 흐름이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음악계의 오랜 계보가 위기를 맞았다. 이제 선배작곡가들의 음악에 경도되어 자기만의 길을 찾지 못하는 음악가는 시대착오적 음악가가 되게 되어버린 것이다.
파스칼 뒤사팽이 주목받은 것은 크세나키스나 에드가 바레즈같은 작곡가들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언제나 명확한 선을 긋고 거리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미학적 측면이나 음악적 측면이 아닌 예술적 측면에서 그러하다. 일례로 형식 면에서, 그는 유럽 음악의 전통인 변주적 형식과 2부 구조 형식을 거의 무시한다(거부한다는 표현보다는 무시한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그 대신 그는 그저 한 마디 한 마디 곡을 쓴다. 이전 마디에서 발생한 음악적 사건들로부터 다음 마디에 일어날 일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음악 안에는 수많은 우연성과 변화가 수시로 개입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될성부른 음악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아니다. 그의 음악은 사전설계되어있지는 않으나 작곡과정에서 완전히 통제되어있다. 파스칼 뒤사팽은 그 섬세하고 복잡한 음향 질감과 화성음들을 무시무시한 힘으로 잡아끌며 때때로 그것을 부수고 비튼다. “생각을 버리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기계적이고 창조적인 변주의 시스템에 도달하면 부숴라. 안 들어도 다 알 수 있다면 멈춰야 한다는 증거다.” “작곡을 할때, 전 사전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전 항상 제가 가는 방향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관심을 두는 것은 예기치 못한 사건의 발생, 전환, 해체입니다.”
음악을 듣는 것보다는 문학작품을 읽으며 작곡의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그는 극도로 정체된 재료 위에서 음악을 구성하면서도 다른 예술매체의 요소들을 음악 안에 접목하는 것을 즐긴다. 오페라작품에 대한 그의 특별한 관심은 이와 같은 취향의 반영일 것이다.
그의 작품들에서 어떤 학파적 특징을 읽어내기란 어렵지만, 그 음악을 관통하는 핵심정서는 명백하다. 그것은 바로 ‘멜랑콜리, 우울함’이다. 병약한 신체 때문에 늘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어린 시절, 일찍 경험한 친구들의 죽음 때문에 그는 일종의 환각과도 같은 어둠을 갖게 되었다.
내면의 어둠이란 범인들에게는 고통이되 그와 같은 천재적 감각의 소유자에게는 특별한 예술적 동기가 되어주는 것이리라,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내면의 어떤 결핍된 부분을 채워나가는 지적 유희처럼 보인다.
“파스칼 뒤사팽은 어떤 사물에 대하여 믿을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발견해내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그것을 아주 지적인 방식으로 승화시키죠. 그는 모든 것을 그가 극도의 즐거움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축해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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